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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K


"배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상황에서 이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헤엄을 칠 줄 알아서 살아남거나, 아니면 물에 빠져 죽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 문제가 된다.


교실의 위기라는 소용돌이 한가운데서는 도서관에 있는 갖가지 책들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온갖 강의와 과정들도 별 쓸모가 없다. 사태를 깨달은 순간에는 기술만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 하임 G. 기너트, "교사와 학생 사이"


교사와 학생 사이 - 10점
하임 기너트 지음, 신홍민 옮김/양철북


이 책을 무슨 이유로 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다만 2014년 11월 말에 샀다는 알라딘 구매리스트 기록만 남아있네요. 오랜만에 책장을 둘러보다가 뒤쪽에 잘 안보이는 책들을 앞으로 빼면서 살펴보다가 이제야 처음 펼쳐본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하임 G.기너트 (Haim G. Ginott)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정신요법과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 분야에서 연구와 실험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뉴욕 대학의 교수인 그는 이스라엘 교육부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는 군요.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건, 교사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교사들의 환멸"을 주고 받는 대화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책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교사 여러 명이 교사 생활에 대해 논의했다. 나이도 젊고, 경험도 일천했지만, 그들을 벌써 환멸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떤 교사들은 실망한 나머지 교사 생활을 접고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학교에 남겠다는 결정을 내린 다른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관심을 쏟을 생각은 아예 포기한 상태였다. 교사들은 확실하고 강한 어조로 마음속에 있던 생각들을 쏟아냈다. 가차없고 숨김없이 심경들을 토로했다.


앤 : 교사 생활한 지 1년이 되었는데, 지금 결론은 이 직업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사랑과 환상에 가득 젖어 있었어요. 이제 환상은 증발하고, 사랑은 가 버렸어요. 교직은 직업이 아니라,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과정, 일수 찍듯 날마다 생명을 거둬가는 과정이에요. (...)


해럴드 : 우리 교육은 패배했어요. 해결책이 있지만, 결코 활용되지 못할 거예요.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교육 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해요. 하지만 정책 당국에서는 절대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얼 : 교육 제도 전체가 불신 위에 세워져 있어요. 교사는 학생을 불신하고, 교장은 교사들을 믿지 못해요. 교육감은 교장들을 의심하고, 교육 위원회는 교육감을 경계해요. 교육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교도서 분위기가 풍기는 규칙과 규제들을 정해 놓고는, 은연중에 교육 제도 속에 몸담은 사람들은 모두 정직하지 못하고, 능력이 없으며, 무책임하다는 비난이나 퍼붓고 있어요. (...)


해럴드 : 우리 장학관은 책과, 서류, 연구를 사랑해요. 오로지 사람만 미워해요. 고대 이집트와 중세 로마의 교육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어요. 그런데 정작 살아 있는 교사들을 감독하는 방법, 그걸 몰라요.


- 하임 G. 기너트, "교사와 학생 사이"


Photo by Andrew Russeth

이런 교사들의 환멸이 가득한 대화를 보여준 뒤, 글쓴이는 자신이 이 책을 쓴 목적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엄청난 고통에 빠져 있던 사람이 유대교 율법 학자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율법 학자는,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이 구해 주실 겁니다."


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때까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교사들도 그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교육 제도가 변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교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오늘 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대답해 보려고 한다.


- 하임 G. 기너트, "교사와 학생 사이"


Photo by Ol.v!er [H2vPk]


이 책은 우리가 지향해야할 이상이 무엇인지 자세히 묘사하거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교육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지를 교사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죠. 그보단 지금 당장 교실에서 겪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가 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정말 다양한 "짧은 사례"들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교사들의 이야기
    2. 제일 좋은 방법
    3. 아주 나쁜 상황
    4. 적절한 의사 소통
    5. 위험한 칭찬
    6. 꾸지람과 가르침
    7. 교사와 학생의 갈등 : 부모의 역할
    8. 숙제
    9. 동기 부여에 관하여
    10. 유익한 수업과 실천 방법
    11. 학부모, 학교 관리자와의 만남
    12. 기억나는 교사


목차만 봐도 글쓴이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교사가 학교와 교실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상황을 주제에 따라 나누어 놓아서 찾아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저는 교사가 아닙니다만, 그동안 만나온 학생들이나 후배들을 비롯해서 주변의 많은 교육자를 만나면서 2015년 현재 한국의 교육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조금이나마 느낍니다. 가뜩이나 학교 밖의 사회가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과 두려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고스란히 학교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도 학생도 학교 관리자도 그 영향을 받고 있죠.


이 책을 쓴 사람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아마 7장과 11장의 내용이 더 다양하고 길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랬다면 한국의 교사들에게 좀 더 유용한 책이 되었을지 모르죠. 이 책을 한글로 옮긴이는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한 번역서가 우리의 공교육 현실에 대한 만능 지침서가 될 수는 없다. 또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제반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몽땅 교사들에게 떠넘기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이다. 최소한의 예의와 규칙도 배우지 못한 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자유분방해지는 아이들 문제를 논의하려면 사실 가정교육부터 따지고 들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하임 G. 기너트, "교사와 학생 사이" 옮긴이(신홍민)의 말.


한국의 교육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교사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엮겨 있는 문제죠. 이 책은 그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그 문제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빠져있는 교사들이 헤엄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의 문제, 학부모와의 문제, 학교와의 문제라는 상황 속에서 절망하거나 슬픔에 빠진 교사들에게 스스로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고 있죠.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에게는 이 책이 조금이라도 선생님들의 답답한 숨통이 트이고,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소박한 기쁨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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