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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icolas Valentin


티스토리를 시작하면서 블로그를 진지하게 운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어떻게 운영하고 글을 어떻게 써야 좋은 블로그인지 알고 싶었죠. 국내외의 유명 블로거들의 책과 인터넷에 있는 좋은 글을 찾아 읽고 다녔습니다. 특히 블로거팁닷컴에 있는 많은 정보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중에 글쓰기 노하우에 대한 글에서 도정일이라는 분을 언급하기에 (블로거팁닷컴:"세상을 품는 따뜻한 글쓰기 인문학자 도정일"), 그분이 쓰신 신문 칼럼을 몇 개 읽어보았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참 마음에 들더군요.


"부자는 자기가 빈털터리 가난뱅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고 상상하지 못한다. 권력자는 자신이 약자의 처지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고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의 상상력은 막혀 있고 마비되어 있다.


상상력의 이런 마비 때문에 대부분의 부자와 권력자들은 가난한 자들과 약자에 대한 이해나 동정의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런 마비를 막자면 인간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 한계레 칼럼, "문학교육이 최고의 인성교육 / 도정일"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할 때마다 제가 늘 그랬듯이, 저는 도정일 교수가 쓴 책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몇 권 있었지만,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이 없어서 결국 서점가서 새 책을 샀습니다. 아, 또 질렀어...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10점
도정일 지음/문학동네


이 책은 제목만 읽고도 지갑을 열 준비가 되었는데, 서문까지 첫 문장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문 같은 것 없이 책 내면 안 되나? 우리가 이 행성에 태어났을 때 서문 써놓고 생을 시작했던가?"


-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서문 중


기분 좋은 파격이었습니다. 물론 늘 서문을 읽으면서 구매를 결정하는 저로서는 서문을 꼭 써주길 원하지만 말이죠.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라는 표제를 달았지만 정작 그런 제목의 글꼭지는 이 산문집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이 문집의 표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친구여, 당신은 안다.


세상이 쓰잘데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우리네 삶에 지극히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안다. 


그러나 이 산문집은 그런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제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런 목록이라면 당신과 내가 앞으로 끊임없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완의 목록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서문 중


마치 이 책을 집어든 제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제 어깨를 감싸주며 말을 거는 느낌이었죠.


Photo by  Michael

저는 이 책 자체와, 그 안에 담긴 글들이 바로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심하게 말하면 책이라는 물건도 사실 심하게 말하면 쓸데라곤 잠자고 싶은데 베게가 없을 때 정도 아닐까요? 하지만 제게 사랑하는 작가들의 책은 빌려주고 잊어먹으면 새로 살 만큼... 참으로 고귀합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쓸데를 생각하지 않아야 고귀해질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강신주 작가가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 제안했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방법이 떠오릅니다. 책에서 소비 사회에 대한 철학자 "보드리야르"를 인용하면서, 사물의 가치를 네 가지, "사용가치(도구), 교환가치(상품), 상징가치(상징), 기호가치(기호)"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상징"에 주목합니다.


사실 '도구', '상품', '기호'라는 사물이 가진 생산주의적 측면은 기본적으로 이기적 동기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사물의 측면들입니다.


하지만 '상징'으로서 타인에게 주는 선물, 혹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주는 사람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하려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정신과 생활의 만족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보드리야르는 '상징'으로서 사물이 가진 측면이 사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산업자본주의의 마수로부터 구원해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보았습니다.


'도구', '상품' 그리고 '기호'로서의 사물의 측면들은 인간을 무한경쟁의 각축장으로 내몰지만, 사물의 '상징적' 측면은 공존의 가치를 중시하는 인문주의적 만남의 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Photo by William Warby


"선물"


선물이란, 물건의 쓰잘데(도구 가치, 교환 가치, 기호 가치)를 무시해버릴 수 있는 강력하면서도 인간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받은 편지, 롤링페이퍼, 처음 만난 조카와 함께 그린 그림은 저에겐 쓰잘데없이 고귀합니다. 이런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이 우리 일상 속에 가득한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들을 계속 늘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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