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느 아이라도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넉넉함과 여유로운 시선이 사라져 버리고, 보다 바람직한 아이상과 그것을 키워내는 바람직한 부모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쟁과 분단, 그리고 배제되지 않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다른 배제를 낳는 구도가 확대되고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심리학은 개개의 전문가의 선의와 노력과는 별개 문제로서, 구조적으로 앞의 도식을 지지하고 강화시키는 데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 오자와 마키코,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부재:교육으로부터의 해방)"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 10점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서현사


지난 번에 포스팅했던 "과학 기술과 심리학의 양면성"에서 언급했던 책입니다.


2015/03/14 - [기타] - 과학 기술과 심리학의 양면성.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는데, 제목이 굉장히 도발적이어서 "심리학이 왜 아이들 편이 아니라는 거지?"라는 궁금함에 꺼내봤습니다. 저자 오자와 마키코의 논리는 상당히 설득력 있었고, 놓치기 쉬운 맹점들을 잘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심리학과 상담학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서, 심리학 책들을 읽는데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이 책이 심리학의 위험한 측면을 참 적절하게 설명해주면서 살짝 제동을 걸어주었습니다. 


역자 분의 머리말에 이 책을 아주 잘 묘사한 글이 있습니다.


"오자와 선생의 글은 기존의 수많은 교육심리학 혹은 발달심리학, 상담심리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결코 '특정한 이론에 기초해서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 이렇게 학생을 가르치면, 그리고 이렇게 상담을 하면, 그들이 저렇게 바뀌고 변화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어떠한 방식으로 가르치면, 학생들은 이렇게 변화할 것'이라는 생각 그 자체가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그러한 생각 너머에 깔려 있는 다양한 전제들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다.


- 오자와 마키코, "심리학은 아이들의 편인가?"

역자(박동섭) 머리말 중에서


제가 하고 싶은 심리상담과 방향이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데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돕는 것.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고, 지지해주는 것. 


로저스의 "사람-중심 상담"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개인 심리치료든 그룹 경험이든 간에 다른 사람 안에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창조하려고 시도했을 때는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내가 성장이 일어나도록 허용해 주는 조건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적극적인 지향 성향이 건설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게의 핵을 분리하는 실험을 했던 과학자도 비슷한 상황 가운데 있었다. 그는 세포가 이쪽저쪽으로 발달하도록 만들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여 세포가 생존하고 자라게 해 주는 조건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을 때 성장 성향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유기체 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심리치료와 집단 경험에서 내가 심리학적 양수를 공급할 수 있다면 건설적인 성장의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비유는 없을 것이다."


- 칼 로저스, "사람-중심 상담"


이런 시각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심리 치료의 정의(?)가 있습니다.


"내담자의 마음 속으로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떠나는 여행"


여기서 저는 상담자가 "여행의 동반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행에서 상담자가 "가이드"면 안됩니다. 동등한 입장. 누가 누구를 치료한다는 생각도 안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얄롬의 소설 "니체가 처음 눈물을 흘렸을 때"가 떠오릅니다. (이 책도 리뷰해야하는데...) 그 소설를 읽으면서 '상담자'와 '내담자'라는 구분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상담자는 항상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성, 합리성을 몸에 익히는 것을 '성숙'이라 이름 붙여 상위에 두고, 감정, 직관을 '미성숙'이라 부르며 하위에 놓는 현대사회에서는 언어를 통해서 명쾌한 표현을 못하는 사람의 주장은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아이'이다.


...아이들의 파괴행동이라는 표현은 언어라는 의사소통수단을 충분히 갖지 못한 자가 궁지에 몰린 끝에 내어 놓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는데, 그 행위의 의미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외재적 관리에 의해 아이들은 한층 더 '학교적인 힘'에 봉쇄되고 만다."


- 오자와 마키코,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상담 만이 아니라 교육에서도, 상대방을 한 명의 독립적인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으면, 어떤 말과 행동이든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이걸 무시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언어적으로 나이에 대한 구별이 분명하기에 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이지 판단하고서 상대방를 대하기가 쉽습니다. 모든 교육 분야와 상담 분야, 나아가서 의료분야의 전문가는 이런 태도를 경계하고,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모두 너무 바쁘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 들어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나 자신도 그것을 자각한다. 자기 이야기만 많이 하느라고 잘 들어주지 못하는 자신을 늘 발견하고 실망을 반복한다.


잘들어주지 못하는 사람이 계속 증가하는 사회에서 지금 아이들도 타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의 삶이 부딪히는 곳에서 필수불가결한 듣는 힘을 잃어버린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상담이라는 기술과 카운슬링 마인드라고 불리는 사조에 관심이 모이는 것은 이러한 사회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상담은 어떤 의미에서 이른바 잘 들어주는 기법이다.


그러면 상담의 보급은 사람들의 듣는 마음과 귀를 복권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아니면 역으로 사람들은 그 지혜를 전문가에게 맡겨서 그 결과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을까? 나는 그것이 후자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상호 대등하게 그리고 공동으로 문제와 사건을 해결해 가는 풍조는 거의 전멸한 것 같이 보이는 현대 사회에 상담 기법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사람과 사람의 관계 상호성과 공동성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갖는 순간 상담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오자와 마키코,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이제는 나와 상대의 마음 마저도 전문가에게 맡겨버리면 된다는 생각. 전문가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저에게 참 많은 질문과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

아이를 가르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아이가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


"어떠한 생명도 어느 시기에든 똑같이 평등하다는 감성, 사상을 우리가 목표로 할 때 '발달' 개념은 그것을 저지하고 혹은 왜곡하는 것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했다.


실제로 그 개념은 상하, 경중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차별긍정론'을 학문적, 과학적 스타일로 그것도 마치 차별과는 인연이 없는 것과 같은 객관적, 중립적 입장으로 위장하면서 지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역할은 많은 학문이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인간을 억압하는 사상와 국가정책을 전문성의 미명 하에 교묘히 감추고 오히려 그것을 지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 도식 속에서 아이가 커가는 것의 기쁨, 귀여움과 재미, 병과 죽음의 깊이발달 가능성, 바람직한 발달 등의 틀 속에서 변화의 방향성을 규정하는 과제로서 수탈당하고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변모해 버린 것이다.


... 평생학습, 평생교육이라는 말과 함께 생애발달학이 보급되고 '현명하게 나이먹는 방식', '바람직한 죽음'을 설파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어른은 아이를 발달시키려고 하는 측의 입장에서, 발달을 강요당하고 억압당하는 당사자가 된다.


할당된 목표를 향해서 발달을 강요당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에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서로 받아들여주면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어른과 아이가 함께 싸워나가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진지하게 던져야 할 물음이다. "


- 오자와 마키코,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이제 성인들도 아이들과 같은 입장이 되었다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수명은 길어졌는데,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더 빨라졌습니다. "평생학습"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