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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oyan Brenn


우리의 역사와 개개인의 경험은 수많은 투사의 예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하는 부정적 투사는 우리가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나 대화하기 무척 어려운 사람, "함께 있기"가 아주 힘든 사람들을 통해 뚜렷하게 인지할 수 있다. 전쟁, 인종차별, 생태계 위기, 성적 억압 등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모든 문제의 실질적인 뿌리는 심리학적 기재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내면의 삶과 특질의 일부를 부인하며 살고 있고 자기 안에서 부인된 그런 점들을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서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이 드러나는 곳에서 항상 덜 인간적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투사가 일어나는데, 이는 자신의 인간성 안에서 가장 억압하고 부인했던 점이 분명 덜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이 모습을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원수는 일관되게 자신의 내면에 억압된 가능성과 에너지를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런 자기기만의 드라마를 방지하기 위한 "올바른 이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의 표현인 "자본주의 전쟁광",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표현인 "깜둥이", "흰둥이", "이탈리아 놈",

성차별주의적인 표현인 "갈보"나 "돼지",

나이에 따른 차별적 표현인 "어린 것", "늙은 것" 등 


모든 표현에서 개개인의 다양한 차이점은 인정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위험한, 무의식적인 거울을 만들어 여기에 반영된 특징을 개개인의 개성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부각시킨다. 


...생태, 역사, 심리, 종교는 모두 개인적 그리고 집단적 억압/투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는 실제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연습으로서 반드시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제레미 테일러,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 (Dream Work)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 - 10점
제레미 테일러 지음, 고혜경 옮김/성바오로출판사


내 자신이 이상하게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결국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안의 모습을 그 사람을 통해 보고 있다는 것과 다름 없다.


마찬가지로 한 집단이 비이성적으로 대하는 대상을 보면, 그 집단이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고 있는 그 집단의 모습을 그 대상으로부터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같은 것들은,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싫은 우리의 모습을 그들을 통해서 보고 있기 때문이겠지. 아마 우리가 이상할 정도로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상들 모두가 결국 우리가 보기 싫어하는 우리의 모습이겠지.


나도, 우리 사회도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텐데...


201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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