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강신주)

아주 낯선 곳을 여행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낯섦이 사라질 때까지 끈덕지게 그 여행지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가?

여행지가 더 이상 나에게 낯설지 않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가 떠나왔던 바로 그곳이 오히려 낯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여행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강신주,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 강신주 지음/그린비

강신주라는 사람을 처음 접했던 것은 아마 2012년 쯤 MBC 라디오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를 팟캐스트로 찾아들었을 때였습니다. 강신주 박사의 사고방식과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어서, 이 사람이 쓴 책은 어떨까 궁금해졌었습니다. 학교 중앙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보니, 박사 학위를 "장자"에 대한 논문으로 받았었다는 것을 알았고, 관련 책으로 이 책을 찾아냈습니다. 이 책은 대중들은 위해서 쓴 책이기에 저 같이 철학에 아는바 없는 사람도 술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 정도였습니다. 뭔가 조금 현실 도피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장자라는 인물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어떤 자신만의 해답을 내렸는지 조금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생각해보면 20대 후반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참 적절했습니다. 연애나 다양한 집단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어려움을 경험했고, 심리학과 상담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의사소통"에 매우 관심을 집중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책의 내용은 머리와 가슴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물론 저자가 책 자체를 매우 재미있게 썼던 이유도 있었겠지요.

이 책에 따르면, 장자의 현실 도피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장자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사용했다는 점도 대단히 놀랍습니다. 장자는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런 방법을 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꿈"과 "신화"도 이야기로 깊은 내용을 전달하며, "영화"도 그렇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직접적인 말이 전하지 못하는 훨씬 더 많은 중요한 것들을 전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장자의 사상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이나 설명이 아니라, 장자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하는 그 이야기들만을 가지고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풀어갑니다.

강신주 박사의 장자에 대한 다른 책 머릿말에서 찾은 문구가 이 책을 통해서 제가 느꼈던 핵심이 되는 내용을 정확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도', 즉 그 길의 끄트머리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이곳에서 우리는 바로 타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장자가 우리에게 만들라고 이야기했던 길은 다른 것이 아닌 타자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타자에게로 건너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타자와의 사랑과 연대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인문학의 정신이 인간에 대한 사랑에 있다는 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의 즐거운 삶을 긍정하고 옹호하려는 정신에서만 가능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인문학의 위기란 결국 인간의 자유와 행복의 위기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 강신주, "망각과 자유"의 머릿말

망각과 자유 - 강신주 지음/갈라파고스

앞서 맨 처음 인용한 문구에서의 "여행"이란 결국 "타자"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자를 내 기준으로 경험하지 않고, 온전히 경험하고나면, 내 자신이 변화합니다. 내 자신의 내면 세계가 더 넓어진달까요. 이 변화란 프로이트가 말했던 "무의식의 의식화"라던가, 융이 말한 "그림자"나 "아니마, 아니무스"를 자신으로 수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엄청 과학자스럽게 양자역학의 space가 새로운 basis를 발견함에 따라서 space의 dimension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점점 더 completeness에 가까워진다는 것으로 이해했었습니다. 양자역학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한 방에 개념들을 파악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소수이므로 이 내용은 조용히 삭제...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은 적고 얕은 것이다."

- 송자

...송견에 따르면 이런 자기이해의 부족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비본질적이고 허구적인 욕망"을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타고난 본질적인 욕망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서로를 파괴하는 다툼과 전쟁에 휘말려 들게된다는 것이다.

...국가주의는 "부족한 재화에 비해 인간의 욕망은 너무도 크다"고, 그래서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선전하곤 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불가피한 갈등의 논리가 국가의 개입을 매번 정당화해 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송겸은 인간의 욕망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따라시 송견의 사상은 결국 국가의 정당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와해시키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 강신주,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저자는 장자의 생각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장자만이 아닌 당시 다른 철학자들을 함께 비교하면서 살펴보기도 합니다. 저는 평소에 제가 무정부주의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하는데, 특히 저 부분을 읽어나갈 때 그런 생각을 가장 강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위의 인용구를 읽으면서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고전 경제학의 전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재화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은 당연히 발생한다."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같은 생각을 더욱 더 지지해줬던 책들이 두 권 더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E. 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리고 미국의 사회학자이면서 심리학자였던 알피 콘의 "경쟁을 넘어서"(최근 번역판은 "경쟁에 반대한다")입니다.

불교 경제학이 적절한 소비 패턴으로 인간의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데 반해, 근대 경제학은 최적의 생산 패턴으로 소비를 극대화하려 한다.

- E. 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 E.F. 슈마허 지음, 이상호 옮김/문예출판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경쟁'의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사회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 알피 콘, "경쟁을 반대한다 No Contest"

경쟁에 반대한다 - 알피 콘 지음, 이영노 옮김/산눈

저 두 책은 제가 매우 큰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책입니다. 슈마허의 책은 "고전적인 경제 구조가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답이다"라는 기존 생각에 "대안책"을 알려주면서 제가 기존의 틀 밖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알피 콘의 책은 "모든 경쟁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건전한 경쟁도 있다"라는 사고 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건전한 경쟁"이라는 개념조차도 깨부숴주었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책이었습니다. 위의 두 책은 나중에 가능한 따로 읽은 책 리뷰를 할까합니다.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

- 장자

위의 문구가 말하는 것처럼, 장자가 말하는 "길"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에리히 프롬이 지적한 "사랑"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장자가 말하는 "길"과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행동의 추상화에 지나지 않는 '사랑'이라는 명사는 인간과 분리된다.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 사람이 그 주체가 되는 내적 행동인 것이다. 나는 사랑할 수 있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없다.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지음, 차경아 옮김/까치글방

저 같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굉장히 친절하게 써준 저자가 덕분에 "장자"라는 사람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의사소통에 대해 이토록 깊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앞서서 존재했었고,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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