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간중심상담 교재로 로저스 책을 사러갔다가 책꽂이에 없어서 점원이 찾으러 간 사이 멀뚱멀뚱 주변의 책들 훑어보다가 발견해서 산 책입니다. 솔직히 말해보면... 네, 그렇습니다. 제목에 혹해서 읽었습니다. ^^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기술 - 10점
안토니 보린체스 지음, 김유경 옮김/레디셋고


그런데 내용이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사랑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떠오르게 하는 책입니다. "사랑의 기술"이 사랑에 왜 기술이 필요한 것이고, 어떤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  알려주었다면, 이 책은 남녀간의 사랑에 집중하면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해야 "사랑의 기술"을 갈고 닦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남자"들에게.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기술유혹하는 기술을 같은 것으로 치부해 가볍게 다뤄진다. 이렇듯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기술과 유혹하는 기술을 단순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상대를 사랑에 빠지게 하려면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것 유혹하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주장하는 맥락 안에서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기술의 세 가지 핵심 개념들의 조작적 정의를 내릴 것이다.


  • 유혹 :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성적 관심을 유발할 수 있어서 생기는 상호간의 의식
  • 사랑에 빠짐 : 매우 열정적인 애정적-감정적-성적 관계의 초기단계
  • 사랑 : 안정적인 계획으로써 지속하길 원하는 관계


이런 사랑의 현상을 이루는 개념들의 정의는 다음의 질문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내용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유혹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 왜 유혹이라는 상호 간의 의식은 사랑에 빠짐으로 변하게 될까?
  • '사랑에 빠짐'에서 어떤 요건이 더해지면 '사랑'이 될까?


- 안토니 보린체스,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기술"


이 책의 저자인 안토니 보린체스는 스페인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성 연구가로, 인본주의 심리학을 스페인에 도입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자 설명은 이 블로그 글을 쓰기 전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이제야 책 내용들이 제 마음에 들었던 이유를 알겠네요. 이 책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관점이 제게 친숙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저자가 중요한 "용어"들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헷갈리게 사용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용어들을 저렇게 세 가지 개념으로 구분하니, 그 자체만으로 머리 속이 좀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이 세 가지 개념 자체에 대한 질문과, "유혹"에서 "사랑에 빠짐"으로, "사랑에 빠짐"에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내용들을 자세히 파고 들어갑니다.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위 방식보다 존재 방식이 더 중요하다. 더 정확하게는 존재 방식의 결과로 행위 방식이 나와야 한다. 이 책에서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기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각자가 개인적 가치들을 통해 자신의 최고 모습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 암묵적으로는 유혹하는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성공은 호색한으로 유명한 돈 후안이나 카사노바의 방법대로 상대를 유혹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조사를 마친 후, 매력이란 개인적 가치의 발전 결과로 타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의지와 확신을 갖고 노력하면 충분히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 안토니 보린체스,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기술"


여기서 "행위 방식"이란, 위에서 언급한 "돈 후안이나 카사노바의 방법"과 같이 "이렇게 하면 상대가 당신에게 사랑에 빠질 것이다"라고 사람들이 말하고 다니는 어떤 메뉴얼이나 지침 같은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존재 방식"이란 내 안에 들어있는 가치있는 어떤 것, 혹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 어떻게 보면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사용한 단어나 그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에리히 프롬이 떠오르고, 그가 썼던 "소유나 존재냐"가 생각났습니다. 


...남들과 교감하는 것은 긍정적인 가치지만, 교감하지 않고 차갑게 있는 것이 긍정적일 때도 있다. 지능도 아주 가치 있지만, 적절하게 표현될 때만 그렇다. 감성이나 솔직함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감성이 있는 반면, 기분 상하게 하는 감성도 있다. 상대를 매료시키는 솔직함이 있는 반면, 불쾌감을 주는 솔직함도 있다.


...성격 지혜와 균형이 더해져야 비로소 매력의 요인이 된다. 이런 가치들을 건설적으로 활용하는 지혜와 조화롭게 사용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따라서 애정 관계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기보다는 평범함을 알맞게 사용할 줄 아는 상식적인 사람이다.


- 안토니 보린체스,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기술"


평소 장점과 단점이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기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이를 매력이라는 개념에서도 적용하는게 흥미로웠습니다. "성격"은 그 자체로 매력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적 특징들을 "건설적으로"와 "조화롭게" 사용해야 매력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짧지만 멋진 말로 결정타를 날리네요. 매력적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함을 알맞게 사용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말로. 이 말 자체로 상당히 위로가 되면서도 논리적이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책은 1부에서는 "사랑에 빠짐"의 이론, 2부에서는 개별적으로 적용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에 인용한 부분들은 모두 앞부분 내용인데, 과연 뒤에는 어떤 글들이 있을지 너무 기대가 됩니다.


  1. 사랑에 빠짐의 이론
    1.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기술
    2. 남녀 관계
    3. 사랑에 빠짐에서 사랑으로
  2. 개별 적용
    1. 출발점
    2. 유혹의 정석
    3. 사랑에 빠지게 만들기 위한 지침들
    4. 사랑에 빠짐의 다양한 유형들
    5. 사랑의 관계 진전
    6. 사랑의 어려움
    7. 사랑의 부재
    8. 미래에 다가올 사랑을 위한 에필로그


전 "사랑"이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지금 가장 절실한 남녀간의 사랑을 포함해서 타인에 대한 모든 종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책과는 관계가 별로 없지만, 저 질문을 쓰고나니, 좋아하는 소설가인 이영도 작가의 작품 중 "눈물의 마시는 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환타지 소설이지만 제게는 결국 "사랑"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사랑할 수 없을까?"


사모는 다시 충격을 받았다. 케이건은 계속 말했다.


"왜 이해할 수 없을까? 입장을 바꿀 수는 없을까? 길지 않은 생, 가슴에서 피비린내를 풍기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의 서로 다른 겉모습은 광적인 증오의 원인이 아니라 다시 없이 커다란 축복이 아닐까?


사람은 새로움 속에 살아간다. 모든 것은 항상 바뀌어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늘이 덮인 저 남부의 이방인들을 우리의 의식과 지혜를 발전시킬 새로운 자극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가장 고마운 선물이 아닐까?


대상이 없는 사랑은 없다. 그리고 새로운 대상은 새로운 사랑을 약속한다. 남쪽에서 온, 비늘 덮인 그들은 나의 또 다른 형제며 혈육이다. 그리고 축복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들은 얼마나 고마운 자들인가.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하나 더 얻었다."


케이건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조소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


사모는 이런 거대한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르다는 것이 증오의 원인이 아니라 거대한 축복의 원인이 될 수 있는, 혹은 그러했던 사람이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우리는 어떻게 서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저는 스스로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이 질문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이 책에서 좀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을 눌러주시고,

글쓴이와 얘기하고 싶으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