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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하나와 앨리스: 살인 사건"

Lazini 2015. 6. 8. 01:29

영화 <하나와 앨리스: 살인 사건> 한 장면 CJ E&M 투니버스


지난번 "추억의 마니"를 혼자 보고는 혼자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 보는 재미에 맛 들린 저는 옥상달빛의 노래에 "하나와 앨리스: 살인 사건" 영상을 입힌 뮤직비디오를 보고 저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덕분에 정장 차림으로 혼자 명동까지 가서 혼자 보고 느끼고 왔네요.

지브리와 디즈니, 혹은 일본 TV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져 있는 저로서는 "하나와 앨리스: 살인 사건"은 애니메이션 기법이 꽤 낯설었습니다. 하나는 독특하게 낮은 각도에서 인물을 보여주는 장면이 꽤 자주 나온다는 점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인물들의 움직임들이 부드럽지 않고 거칠었던 점입니다. 디즈니 같은 완벽주의 회사에서는 인물의 움직임을 실제 사람의 움직임을 캡처해서 높은 초당 프레임으로 부드럽고 사실적인 움직임을 재현하려고 하죠.

하지만 "하나와 앨리스: 살인 사건"은 그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프레임을 사용하면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 거친 움직임이 묘하게 경쾌함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이런 경쾌함은 영화의 내용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보통의 영화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이들을 하나씩 해소해가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이 영화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를 잘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 저게 영화의 핵심 갈등인가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조금 지나면 그 문제는 어느새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모든 문제를 그 원인까지 낱낱이 파헤쳐서 해결하려고 하는 생각을 날려주는 영화라고 할까요? 그래서 왠지 모르게 시원함까지 느껴지는 과감함 혹은 무심함이 담긴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이런 영화의 전체 느낌이 고스란히 앨리스라는 인물에 담겨있는 듯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앨리스라는 인물이 너무도 좋아지더군요. 앨리스의 말과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시원하면서도 편안하고 긴장감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매력적인 인물이어서 곁에 두고 싶어집니다.

이 영화는 어느 순간 이야기가 진지해지는가 싶어서 집중하다 보면 곧 피식 웃으면서 긴장감을 놓게 해줍니다. 그런 장면들이 점점 자주 나타나면서 영화 초반에 손에 쥐고 있던 긴장의 끈을 어느새 제가 놓고 있더군요. 그러다 영화 후반에 가서는 저도 모르게 불편하던 구두를 벗어버리고 두 무릎을 팔로 껴안고 의자에 묻힌 채 마음 편하게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제 앞과 양옆으로 모든 좌석이 텅 비어있었으니 민폐짓은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제작진 명단이 올라갈 때, 크로키 그림을 이어서 보여주는 듯한 장면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타이밍을 계산하기 위한 애니메틱 단계에 만들어진 작업물 같습니다. 엔딩곡이 흐르는 동안 영화 전체가 빠르게 지나가더군요. 이와 비슷한 그림으로 짧은 콘티가 만화처럼 담겨있는 작은 책자를 영화관 들어갈 때 받았는데, 여기에는 영화 엔딩 이후 장면이 짧게 담겨있었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만화책 보듯이 읽었는데 또 한 번 피식 웃게 되는 작은 즐거움을 주더군요. 맛있는 과자를 다 먹고서 입술에 묻은 과자 가루를 혀로 훑어서 다시 맛본 느낌이랄까요? 보너스 영상이 아니라 이런 것도 꽤 괜찮네요.

골치 아픈 일들 잔뜩 있고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습관적인 긴장을 자연스럽게 풀어주고 마음 편하게 시간을 즐기게 해주는 영화로서 추천하고 싶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살인 사건"이라는 긴장감 넘치는 영화 제목도 일관된 의도인 듯해서 흥미롭네요.)


추신 : 뒤져보니 이와이 슌지 감독이 실제 촬영한 영상을 가지고 애니메이션화하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낯선 카메라 각도가 잦았던 거군요.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 (2015)

The Case of Hana & Alice 
7.9
감독
이와이 슌지
출연
아오이 유우, 스즈키 안, 카츠지 료, 쿠로키 하루, 키무라 타에
정보
애니메이션 | 일본 | 99 분 | 2015-05-27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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