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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겨울왕국 Frozen>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경고 : 이 글에는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의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안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겨울왕국을 처음 보았을 때는 엘사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보면 다시 볼수록 점점 안나에게로 관심을 옮겨지더군요. 제가 특히 집중했던건 안나의 두 가지 특징이었습니다.


우선 첫 번째 특징은 "두려움 없음 (Fearless)" 입니다. 지난 3편에서 이야기했듯이 엘사는 영화 내내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싸웠습니다. (겨울왕국 : 꿈 상징으로 바라보기 (3)) 하지만 안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전혀 없습니다. 겨울왕국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죠. (딱 한 번의 예외가 있는데, 이는 조금 뒤에 언급하겠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대신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낯선 것을 마주했을 때 안나는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을 보이죠. 이런 두려움 없고 호기심 가득한 존재, 많이 익숙하지 않나요? 어린이들이죠. 


Photo by Alkawa Ke


융의 이론에서는 아이는 잠재력을 상징한다. (...) 어린이는 마술동자, 신성한 아이, 자연 속의 아이처럼 긍정적인 상징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 속에서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삶의 여러 측면을 대표해서 상처받기 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아, 다친 아이,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아이 등이 꿈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며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인 우리 인격의 여러 영역을 드러내 보여준다.


- 제니퍼 파커, "꿈과 대화하다"


겨울왕국이 꿈 속 이야기라면 그 속에 나온 안나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어린 아이, 내면아이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과 창조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우리 대부분의 경우는, 이 내면아이가 상처를 받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어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애들 같이 굴지마"라는 말을 해서 조금 마음이 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뭔가 부끄러움을 느꼈죠.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제는 그 말을 했던 친구가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그 친구는 아마도 "자신의 내면아이"를 그런 식으로 혼내거나 무시하고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그게 그 친구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더 안타깝더군요.


우리는 마음 속에서 있는 상처받은 어린 아이를 알아차려주고, 그 아이를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애 같다"고 다그치지 말구요. 이렇게 내면아이를 돌보는 것은 정신적 치유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는 앞서 2편에서 언급했던 "그림자"와 겹쳐지는 부분이죠. (참고:겨울왕국 : 꿈 상징으로 바라보기 (2)) 그림자와 내면아이, 둘 다 보통 무의식 속에 있는 내 모습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를 잘 보살피고 양육하게 되면, 그들 안에 감추어져 있는 훌륭한 선천적인 아이의 창조적인 힘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통합이 이루어지면, 내면아이는 그 사람의 새로운 재생과 원기가 되는 자원이 될 것이다.


칼 융은 이 타고난 모습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아이를 가리켜 '놀라운 아이 wonder child'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우리의 탐험에 대한 타고난 잠재력경이로움 또는 창조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John Bradshaw,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엘사가 자신의 힘을 숨기게 된 것은 안나 때문이었고, 파티장에서 엘사의 장갑을 벗기고 힘을 끄집어 낸 것도 안나였고, 엘사가 자신의 사랑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해준 것도 얼어붙어버린 안나였습니다. 결국 엘사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건 바로 안나인거죠.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경이로운 잠재력을 끄집어내는데 내면아이와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엘사는 안나가 자기 곁에 있는 걸 두려워하며 성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안나를 다치게도 하죠. "내면아이가 다칠까봐"한 행동들이지만 그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죠. 의식의 꼭대기라고 할 수 있는 산 위의 성에서 안나를 쫓아낸 것은, 왠지 마음 속에 있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저를 비롯한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보입니다. 그리고 한 번 다친 경험이 있기에 다시 상처 받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는 경향도 있는거죠.


Photo by David Gallagher


사실 안나도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엘사가 방문을 닫고 있던 시간입니다. 안나는 몇 년 동안이나 엘사의 방문을 노크하며 "같이 눈사람 만들래? Do you wanna build a snowman?"라고 물어봤지만 전혀 답이 없고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죠. 그러다 청소년기가 지나서부터 더이상 노크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좌절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죠. 원래 악플보다 무플이 가장 상처... 


이런 상처받은 경험 때문에 겨울왕국 전체에 걸쳐서 안나가 유일하게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며 "망설이는" 장면이 바로, 엘사의 성에 도착해서 닫힌 문 앞에서 노크를 하는 장면입니다. 안나가 문 앞에서 노크하는 것을 그토록 망설였던 이유는 과거와 같은 경험을 겪을까봐입니다. 노크해도 답이 없고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 가장 두려운 거죠. 마침내 노크하고 문이 열리자 안나는 놀라면서 말하죠. "열려있었네. 이런 적 처음이야. It opened. That's a first."


안나는 참 대단합니다. 수년간 끝없이 좌절만 겪었던 것을 다시 시도했으니까요. 다시 용기내서 노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마 대관식과 올라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대관식은 그 덕분에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문이 열리고, 파티장에서 안나가 엘사를 만나서 서로 마음을 나눌 기회를 얻게 해주었죠.

처음에 안나는 엘사 옆에 다가가는 것조차도 하면 안되는 행동으로 생각하면서 너무 가까이 있지 않도록 거리를 벌리기도 하죠. 그러면서 불안한 눈으로 조심스럽게 엘사의 눈치를 봅니다. 엘사가 먼저 인사하자, 안나는 엘사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그 사실에 엄청나게 당황하죠. 안나에게 엘사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반응입니다.


엘사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 칭찬을 해주고, 자연스럽게 공감을 표현하자 안나의 표정이 점점 바뀝니다. 엘사의 눈치를 보던 표정에서 엘사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바뀌죠. 안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면서 말합니다. "늘 이랬으면 좋겠다. I wish it could be like this all the time." 이 말은 성문이 열려서 기쁘다는 말보다 엘사의 방문이 열려서 함께 있는 게 좋다라는 말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이런 만남을 경험했기에 안나는 엘사의 성 앞에서 용기내서 수 년만에 다시 노크를 시도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희망을 봤던 거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라프라는 존재입니다. 안나가 노크하면서 말하는 "같이 눈사람 만들래?"는 제가 3편에서 언급한 엘사가 힘을 해방시키면서 처음 만든 것이 올라프였다는 이야기와 연결됩니다.(겨울왕국 : 꿈 상징으로 바라보기 (3)) 즉, 엘사는 수 년간 안나에게 하고 싶었던 대답으로 눈사람을 만든 것이죠. 그래서 올라프를 본 안나는 그게 자신의 노크에 대한 엘사의 대답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꼈을겁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엘사가 만든 올라프가 안나를 엘사가 있는 곳까지 안내하죠. 올라프는 엘사의 "진짜 속 마음"을 드러내주고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죠.


영화 <겨울왕국 Frozen>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심하게 말하면 겨울왕국이라는 영화는 안나가 엘사에게 문을 열고 함께 놀자고 노크 하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나의 노크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긴 행동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 속 내면 아이도 이렇게 우리 문 앞에서 노크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같이 눈사람 만들자고 하면서.


1편에서 겨울왕국이 기나긴 성인식의 과정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겨울왕국 : 꿈 상징으로 바라보기 (1)) 역설적이게도 성인이 되는 과정이란, 마음 속에서 우리에게 노크하고 있는 이 어린 아이에게 문을 열어주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의 내면아이를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잘 보살피면서 함께 하는 법을 배워가는게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는 제가 주목한 안나의 두 번째 특징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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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minttaste 내면의 어린 아이를 잘 보살피면 우리 안에 내재된 잠재력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 와 닿네요. 그리고 두려움의 반댓말이 반드시 용기가 아니라 호기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
    2015.05.11 21:51
  • 프로필사진 Lazini 두려움의 반대가 용기가 아니라 호기심이라.. 굉장히 흥미로운 생각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낯선 것, 낯선 경험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중 어떤 것이 더 강한가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질 수 있겠네요. ^^ 2015.05.12 00:31 신고
  • 프로필사진 ssoooo 융은 항상 관심이 가서 책을 읽어도 이해가 안 와닿아서 물고기 놔주듯 돌려보낸 것이 몇 번. 최근에 좀 이해가 되면서 글쓴이님의 글을 인상깊게 보게 되었어요. 다음에 해주실 이야기들도 너무 궁금한데 언제 또 글을 나눠주실까-하고 지나가다가 오늘에서야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댓글을 달아달라는 말이 눈에 들어오네요. 여러글들 정말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다립니다 ^^ 2016.02.12 15:57
  • 프로필사진 Lazini 아.. 너무 감사드려요.ㅠㅜ 뒤에 쓸 글이 거의 겨울왕국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까운데 꽤 오랫동안 잘 써지지가 않아서 못올리고 있었어요.ㅠㅜ 그런데 이렇게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급 의욕이 생기네요! 겨울왕국 한 번 더 보고 떠오르는 것들 이야기 적어보고 싶어졌어요! 고맙습니다! ^^ 2016.02.12 16: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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