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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직장에 나가는 것 아이의 정신 건강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70년대 이후 발표된 이론과 연구 결과를 보아도 엄마의 직장 유무에 따른 아이의 사회화 과정, 지능 발달 및 기타 성장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사이에 편차가 생기는 이유는 엄마와 떨어졌을 때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웠는지, 즉 양육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바깥활동을 하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어떤 관계를 형성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엄마가 기분이 좋아야 아이도 기분이 좋다'는 말은 곧 엄마가 기분이 나쁘면 아이도 같이 나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아이에게 전능한 힘을 보이고 싶어 하는 엄마들의 심리 중 하나이며, 나아가 자녀 양육의 의무에서 해방되고 싶은 아빠, 교육자, 정치적인 결정권을 쥔 사람들이 만든 편견이기도 하다.


- 실비안 지암피노,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 10점
실비안 지암피노 지음, 허지연 옮김/열음사


제 나이가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갈 때쯤부터, 주변에 있는 여자들이 결혼과 출산, 그리고 직업적인 일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한숨쉬며 이야기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남자의 육아휴직은 커녕, 여성의 육아휴직도 쓰기 힘든 분위기의 한국에서는 더욱 육아의 부담이 여성들에게 집중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육아"라는 개념에 "엄마"라는 존재의 비중이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한국 여자들의 고민을 아주 깊이 파고든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작년(2014년) 5월 쯤 발견했었습니다. 2000년대에 출간된 프랑스 아동 전문 정신분석가이자 한 명의 엄마인 저자 실비암 지암피노.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었는데, 읽을 수록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너무 많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한국 여성들에게 반드시 권하고픈이며, 한국 남성들에게 무조건 읽으라고 강요하고픈입니다.


'아이에게 엄마만 한 존재는 없다?'

세상의 엄마들은 흔히 위와 같이 생각한다. 물론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아 전문가들이 이 주장을 객관적인 사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 왜곡된 진실은 결국 엄마를 대신할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을 막고 가정에서 지출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경제적인 능력과 고용문제를 이유로 여성을 집 안에만 머물게 하는 것은 엄마와 아이의 현재는 물론 미래에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엄마가 직장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자녀와의 관계가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랑스 국가사회활동관측소ODAS의 연구 발표에 따르면, 가정에서 학대받는 아이의 경우 부모가 둘 다 무직자이거나 혹은 둘 중 한 사람이 무직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자녀를 학대하는 엄마의 경우, 10명 중 8명이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성이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집에 있어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직장에 다니는 엄마가 자녀에게 훨씬 이롭다.


- 실비안 지암피노,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저 역시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자라온 남자인지라, 육아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있었습니다. 제 나름 균형잡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이 책은 강하게 지적하기도 하고, 대충 짐작하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자녀를 학대하는 엄마의 대부분이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성이었다는 점은 상당히 충격이었습니다. 학대하는 부모의 마음상태를 살펴보면 참 당연한 것인데, 이렇게 통계적으로 확인을 하니 느낌이 다르네요.


평소 막연하지만 생각하고 있던 "좋은 엄마", "좋은 아빠"의 필수 조건 중 하나가 "자존감"이었습니다.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요구하지 않고, 자신이 불안하니까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존재의 가치가 아이에게만 달려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보다 자존감이 낮을 확률이 높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위의 통계 결과는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직장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직장에 다니는 엄마는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바로 아이가 엄마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어린 나이에 유치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그렇지만 실상은 만 3세 이하의 아이들이 더 나이 든 아이들보다 타인과의 애착 관계가 덜 복잡하다.


아이가 처음으로 맺는 타인과의 관계와 그 중요성을 다룬 과학적 연구들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러한 연구는 보통 애정 결핍과 아이의 사기 저하를 다루고 있으며, 그 기본 전제를 살펴보면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은 물론 엄마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동시에 평범한 엄마가 아이를 하루 종일 남에게 맡기는 것에 대해 불안한 시각을 내비친다.

반면, 유럽에서는 아이와 관련한 경험적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 중인데 이 연구는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랑수아즈 돌토는 이 연구의 선구자 역할을 한 안나 프로이트(Anne Freud)와 멜라니 클렌(Melanie Klein)의 뒤를 이어, 아이의 자극이 집중되는 대상이 엄마라는 견해에 반발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엄마와 아이가 떨어져 지내는 것이 꼭 부모 자식 사이의 단절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또 엄마가 옆에 없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모성애의 결핍이나 애정 결핍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엄마는 아이가 엄마 아닌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아이를 격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면서 아이와 떨어지는 것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편견은 이제 버려야 할 때다.


- 실비안 지암피노,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이전 세대에는 지금처럼 한 집에 한 두명의 자녀가 아니라, 5명 이상 여러 자녀를 낳는 집이 많았습니다. 만약 엄마가 아이와 함께하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이라면, 그 시대의 아이들은 지금의 아이들보다 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육아의 핵심은, 아이가 세상과 타인과 올바르게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이 반드시 엄마여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자녀를 출산한 다음, 아버님의 직장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여러 예비 아빠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들은 질문을 잘못 이해한 줄 알고 내게 질문 내용을 다시 물었다. 그리고 응답자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장생활의 특별한 변동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반면, 출산 후 직장활동에 대해 여성에게 질문을 해보며 매우 장황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어떤 남편은 아내에게 "여보, 하고 싶은 대로 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은 이 말을 듣고 오히려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은요, 제가 일을 그만둠으로써 '그냥 나 혼자만 손해 보면 되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좋자고 직장일에 매달리면 우리 아기는 누구보다 가장 중요한 엄마를 잃게 되니까요."

...남편은 인자한 태도로 일에 대한 선택권을 아내에게 넘겼다. 그러나 남편의 이러한 행동을 자칫 차후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 미리부터임을 회피한다는 태도로 보일 수 있다.

결정권을 여성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여성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거나 차후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남편이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실비안 지암피노,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질문에 대한 반응 자체가 우리의 현재 육아에 대한 인식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야 결혼도 안한 새파랗게 어린 남자입니다만, 저런 질문에는 어떻게 반응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이 책은 "집에 있어주는 엄마" = "아이에게 좋은 엄마", "밖에서 일하는 엄마" = "아이에게 안좋은 엄마"라는 도식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헛소리인지를 알려줍니다. 이를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의외였던 부분은 "밖에서 일하는 엄마"도, "집에 있어주는 엄마"도 둘 다 자신이 엄마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일하는 여성이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것은 인간이 예수의 성배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또한 직장을 포기하고 가족에게 모든 것을 헌신한 여성 역시 가족 간의 조화와 건강을 지키려고 늘 노력한다.

전업주부인 여성이 자녀를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밖에서 일하는 여성 역시 집에 와서 자녀를 챙기기는 마찬가지다.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공통점은 일을 하는 여성이나 집에 있는 여성이나 둘 다 이상적인 현모양처상을 실현하지 못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여성은 자신이 피곤한 이유가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부의 도움을 요청할 여유가 있을 때는, 자신의 임하에 가사와 자녀 양육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혹시나 자녀에게 부족한 것이 있을까 끊임없이 자문을 구하고, 이 때문에 직장뿐 아니라 집에서까지 기진맥진해지는 일이 다반사다.

...그렇다고 전업주부가 직정여성보다 더 안정적인 삶을 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업주부 역시 피곤함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업주부들은 자신이 지금 자녀들을 잘 키우고 있는지 지주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행여나 아이들이 아프거나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 의기소침해 있을 때가 많다. 최선을 다해 자녀를 기르고 있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두려움이 앞선다.


직장여성과 마찬가지로 전업주부 역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엄마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 실비안 지암피노,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이 책을 읽다가 느낀 점은 엄마들이 너무 괴롭고 감당해야하는 짐이 너무 무겁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짐은 엄마들이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짐이 아니며, 남자들을 비롯한 사회가 여자들에게 미뤄버린 짐입니다. 또한 심리학계가 미뤄버린 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심리학은 아이들의 편인가?", "과학 기술과 심리학의 양면성"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2015/03/16 - [읽은 책 리뷰] - 심리학은 아이들의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2015/03/14 - [기타] - 과학 기술과 심리학의 양면성.


이 책이 한국 사회가 그동안 엄마들이 스스로 죄책감을 갖도록 주입한 사고방식을 가차없이 깨버리는 책입니다. 다만 저자의 나라인 프랑스와는 달리, 현재 한국의 상황은 일하는 엄마가 아이를 맡길 안전한 곳이 없다는게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사회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은 사람을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시 하는 가치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엄마들을 죄책감 속으로 밀어넣고 있으며, 동시에 일하는 엄마들은 죄책감과 더불어 아이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까지 감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참 여러가지로 여자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고. 내가 이 상황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뭘지 고민이 됩니다. 나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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