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는 살면서 일기를 꾸준히 써본 사람이 아니다. 복잡한 마음이나 생각을 글로 풀어낸 적은 종종 있지만, 이를 규칙적으로 해본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나는 규칙적이기보다 즉흥적인 사람이다. 일기만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그렇다.

 

이런 내가 요즘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하루도 빠뜨린 적이 없다. 내가 꾸준히 하는 것을 성공하다니, 너무 신기하다. 그래서 나의 이런 경험을 지금 기록해두려고 한다. 미래의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일기는 왜 써야할까?

 

"인간은 연속적인 자아가 아니다."

 

KBS 토크쇼 "대화의 희열"에서 김중혁 작가와 아이유가 이야기하면서 나온 말이다. 이 말에 무릅을 쳤다. 정말 맞는 말이다. ("대화의 희열" 유튜브 영상)

 

중학교 시절에 내가 썼던 일기를 보면 중학생의 내가 그 안에 있다. 대학 시절 싸이월드에 남겼던 일기를 보면, 대학 시절 내가 보인다. 신기한 것은, 이런 과거의 내 모습들이 지금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거짓말 같다.

 

KBS 토크쇼 "대화의 희열"의 장면 (2018.10.27)

 

나는 행복은 "성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못했던 일을 오늘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람은 가장 큰 성취와 만족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들 수 없었던 무게를 들어올린 역도 선수, 풀지 못하던 수학 문제를 풀어낸 학생, 한 단계 높은 랭크 게임으로 승급한 사람. 모두 성장의 기쁨이다.

 

행복은 성장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연속적인 자아가 아니라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제대로 비교하지 못한다. "현재의 나"만 잘 보인다. 우리 자신의 변화가 느리면 느릴 수록, 더욱 인식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변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느릴수록 변화를 알기 어렵다

 

심리학에서는 변화맹(Change Blindness)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걸 지적하는 말이다. 굉장히 큰 변화가 눈 앞에서 벌어짐에도 우리는 이를 자주 놓친다. 믿지 못하겠다면, 아래 영상을 보라. 영상을 재생하면서 사진 속에서 어떤 것이 바뀌는지 찾아보라.

 

Change Blindness 예시 영상

 

대부분의 사람은 위의 영상에서 변화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다. 느린 변화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나는 이게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하루 하루를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성장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인식을 못하는 거다.

 

자신의 성장을 못 느끼고 산다는 것은, 너무도 손해다. 사람은 성장을 체감할 수 있을 때, 자신감이 오르고 활기도 생긴다. 이런 에너지가 다시 성장을 촉진시킨다. 나는 선순환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인류의 발전은 기록 덕분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겐 기록이 필요하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일기다. 나 자신을 기록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했고, 어떤 시도를 해오고 있는지 기록하는 거다. 그래야 미래의 내가 성장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

 

게다가 일기는 쓰는 자체로 도움이 된다. 일기 쓰기는 신체 건강과 심리적 건강을 향상시키고, 대인관계도 좋게 만든다. 이러한 일기의 효과를 입증한 사회 심리학 연구들이 수백개가 있다고 한다. (김창준님의 애자일 이야기 블로그 글 참고

 

일기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꾸준히 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방법이다. 나에게 힌트를 준 것은 아래의 책이었다.

 

제럴드 M. 와인버그의 책, "테크니컬 리더"

 

"... 나는 일기를 5분 동안 쓰는 것보다 10분 동안 쓰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못 생각한 거죠. 매일 일기 쓰는 시간을 점점 늘리다가 결국에는 일기를 쓰는 시간이 두려워졌어요. 지금은 타이머를 5분으로 맞춰 놓습니다. 타이머가 울렸을 때 계속 쓰고 싶으면 더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정해진 시간 덕분에 스스로에 대해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from 제럴드 와인버그(Gerald M. Weinberg), "테크니컬 리더(Becoming a Technical Leader)", p.127

 

일기를 쓰는 시간이 두려워졌다는 말에서 크게 공감했다. 의지력이 항상 부족한 나같은 사람에겐 부담감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첫째, 5분 동안만 쓴다.

 

5분이 지나면, 쓰던 문장만 마무리하고 일기를 끝낸다. 5분 타이머는 무아스 큐브 타이머를 사용한다. 휴대폰도 쓸 수 있겠지만, 앱을 키고, 시간을 맞추고, 스타트 버튼을 터치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없에버리는게 중요했다. 쓰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즉시 시작할 수 있는게 나에겐 중요했다.

 

무아스 큐브 타이머, 책상 위에 항상 두고 쓰기 좋다

 

둘째, 컴퓨터로 노션(Notion)에 기록한다.

 

사실 어디에 쓰든 상관없다. 다만 빠르게 작성할 수 있으면서, 기록을 모아두고, 다시 보기 쉬워야 했다. 손으로 써도 상관없지만, 나는 매일 매일 컴퓨터 앞에 앉기 때문에 컴퓨터로 쓰는게 일기를 쓸 확률을 높인다고 생각했다.

 

 

셋째, Gmail로 매일 알려주도록 한다.

 

나는 내가 일기 쓰기를 매일 기억하지 못할 위험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Gmail의 예약 전송 기능을 사용했다. 방법은 이렇다.

 

우선 나 자신에게 "오늘 일기 5분간 쓰기"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낸다.

 

자기 자신에게 메일을 보낸다

 

일기를 작성하고 나면, 해당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이때 예약 전송 기능을 사용해서 내일 아침 8시에 전송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다음날 아침에 메일이 날라오게 된다.

 

답장을 예약 전송(Schedule send)로 한다
예약 전송 시간을 내일 아침(Tomorrow Morning)으로 한다

 

나는 스마트폰을 늘 가까이 두고 지내는 사람이다. 특히 스마트폰을 확인할 때, 앱 아이콘 위에 있는 숫자 표시를 나는 내버려두지 못한다. 

 

Gmail 앱 위에 빨간 숫자 1을 난 견딜 수가 없다

 

위와 같은 빨간 1 표시를 지우고 싶은 마음에 나는 일기를 빨리 쓰고 싶어진다. 일기를 써야만 메일에 답장을 예약 전송할 수 있고, 저 숫자가 지워지니까. 나라는 사람의 습관을 이용한 거다

 

이상이 내가 일기를 쓰게된 이유와 꾸준히 쓰기 위해 사용한 전략이다. 이 전략이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작은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