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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 게임과 철도는 아마도 절대 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철도는 보드 게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테마 중 하나고, 티켓 투 라이드부터 18XX까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보드 게임 중 상당수가 철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보드 게임을 하시던 분들이 자기도 모르게 철도 매니아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물론 그 반대도 있고요.

스노도니아는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철도' 게임 중 하나입니다. 대다수의 철도 게임은 보드 위에 여러 도시들이 있고, 그 도시들 사이를 철도로 연결하면서 수익 또는 승점을 얻습니다. 하지만 스노도니아는 조금 다릅니다. 



이름 : Snowdonia

디자이너 : Tony Boydell

제작년도 : 2012

인원 : 1-5인

연령 : 10세 이상

시간 : 30-90분

분류 : 일꾼 놓기

보드게임긱 순위 : 306 (2016/11 기준)


스노도니아의 배경은 웨일즈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스노든 산입니다. 1894년 12월 이 산에 철도를 건설하기로 결정이 된 후, 약 1년간의 공사 끝에 1896년 2월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지역이라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마쳤다고 하네요. 이후 4월에 운행을 시작하였으나, 사건 사고로 인해 본격적으로 운행되기 시작한 것은 1년도 더 지난 1897년 6월부터였습니다.

이 철도의 이름이 Snowdon Mountain Railway이고, 이 게임의 목적입니다. 플레이어들은 땅을 고르고 철도와 역을 지어, 종착역인 산 정상 (Summit)까지 철로를 놓게 됩니다.


출처 : http://www.eisenbahn-romantik.ch/bilder-galerie/wales/wales/north-wales/snowdon-mountain-railway/snowdon-railway-08-204.html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nowdon_Mountain_Railway


앞서 말했듯이, 스노도니아는 여러 지점이 보드 위에 퍼져 있어 그 사이를 원하는 대로 연결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이미 철로를 놓는 순서와 지어야 할 역들은 정해져 있습니다. 이는 보드 주변에 둘러놓은 카드로 표현됩니다.

역과 역 사이에 정해진 숫자만큼의 철로 카드를 랜덤하게 놓고, 철로 카드와 역 카드 위에 해당 숫자만큼의 잡석을 놓습니다. 보드 위에 자원 큐브를 올려놓고 계약 카드를 깔면 준비가 끝납니다.


스노도니아는 일꾼 놓기 게임입니다. 각자 2~3개의 일꾼을 돌아가면서 놓은 후, 보드의 맨 왼쪽부터 해당 칸의 행동을 진행하게 됩니다. 한 행동 당 일꾼을 놓을 수 있는 칸의 개수는 제각각입니다.

행동 칸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자원 가져오기 : 보드 위에서 3개까지의 자원 큐브를 가져옵니다. 자원은 철, 돌, 석탄이 있으며, 석탄은 최대 1개까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선 마커를 가져오는 칸도 있습니다.

B. 땅 파기 : 현재 날씨에 해당하는 만큼 땅을 팝니다. 시작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철로 또는 역 위에 놓인 잡석을 가져옵니다. 이 행동으로 역 위에 놓인 마지막 잡석을 가져오면 그 칸에 플레이어 색의 큐브를 놓습니다.

C. 자원 바꾸기 : 철을 강철봉 (3:1)으로, 또는 잡석을 돌 (2:1)로 총 3번까지 변환합니다.

D. 철로 놓기 : 현재 날씨에 해당하는 만큼 철로를 놓습니다. 미리 땅이 파여져있어야 합니다. 철로 하나 당 강철봉 하나가 필요합니다. 플레이어 색의 큐브를 놓아 그 플레이어가 지었음을 표시합니다.

E. 역 건설하기 / 기차 사기 : 철로가 어느 한 역까지 놓이면 해당 자원을 내고 그 역의 일부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역시 플레이어 큐브로 표시합니다.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차를 살 수 있습니다. 기차는 석탄을 내고 추가 일꾼을 받아오는 것을 포함한 여러가지 특수 능력을 제공합니다.

F. 계약 카드 얻기 : 계약 카드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게임 중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주고, 게임 종료 시 조건을 만족했다면 추가 점수를 줍니다.

G. 측량사 이동 : '패스'인데, 이 게임에서는 특이하게 패스하면서 측량사를 한 칸 이동시킵니다. 게임 종료 시 측량사의 위치에 따라 추가 점수를 받습니다.



일꾼 놓기와 행동 단계가 끝나면, 이 게임의 두 가지 랜덤 요소인 날씨와 자원 큐브가 발동됩니다.

날씨는 맑음, 비, 흐림 세 가지가 있으며, 계약 카드의 뒷면에 의해 '예보'가 됩니다. 맑은 날씨엔 땅 파기와 철로 놓기의 효율이 좋아지며, 비가 오면 안 좋아집니다. 흐린 날씨는 철도 공사를 하기엔 너무 위험하므로 땅 파기와 철로 놓기 행동을 아예 할 수 없게 됩니다.

자원 주머니가 있습니다. 이 주머니 안엔 특정 수의 철, 돌, 석탄, 그리고 하얀색 이벤트 큐브가 들어있으며, 매 라운드 종료마다 특정 수를 꺼내 보드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 때 하얀색 큐브가 나오면 나온 수만큼 이벤트를 발동시킵니다.

이벤트는 일종의 '대기업'입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땅을 파고, 철로를 놓고, 역을 건설합니다. 대기업이라 그런지 흐린 날씨에도 공사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기도 해서, 어느 정도 이벤트 큐브가 나와야지만 그 때부터 기차를 살 수 있게 되고, 기차의 유지비를 내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게임 종료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1. 누군가가 (플레이어 또는 이벤트) 철로를 꼭대기까지 지었을 때.

2. 누군가가 자신의 큐브를 16개 다 놓았을 때.

건설한 철로와 역, 조건을 만족한 계약 카드, 측량사의 위치에 따른 승점 등을 모두 더하여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스노도니아는 얼핏 보면 평범하고 밋밋한 게임처럼 보입니다. 자원을 얻고 그 자원을 변환한 후 그걸 사용해 승점을 얻는 일꾼 놓기 게임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지요. 해외에선 개성 없는 유로게임들을 비꼴 때 JASE, Just Another Soulless Euro (흔해 빠진 영혼 없는 유로게임)라고 하는데, 이 게임을 그런 류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노도니아는 여타 유로게임과 차별화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벤트, 넓게 보면 자원 주머니의 존재입니다.



이벤트는 플레이어 입장에선 참으로 고약합니다. 철로와 역은 그 자체로 중요한 점수원이고, 계약 카드 점수를 위해선 땅 파기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벤트는 터질 때마다 땅을 다 파버리고 철로와 역을 완공시켜 버림으로써 플레이어들의 득점 기회를 빼앗습니다. 기차의 유지비를 무는 이벤트도 있어 꼼짝없이 비싼 기차를 버려야 하기도 하죠. 플레이어들은 이벤트가 언제 터질 지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벤트가 발동할 확률을 플레이어들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벤트는 자원 주머니에서 하얀색 큐브가 나올 때마다 발동되는데, 주머니 안에 다른 자원 큐브가 많으면 그만큼 하얀색 큐브가 나올 확률이 줄게 됩니다. 즉, 플레이어들이 자원을 바로바로 소비해서 다시 집어 넣으면 이벤트가 발생할 확률이 줄어들고, 꿍쳐 놓으면 확률이 증가하지요. 따라서 여타 자원 변환 게임과는 다르게, 자원을 쌓아놓고 효율적인 행동만 노리는 것은 결코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이벤트 때문에 게임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비효율적으로라도 철로와 역을 더 놓은 플레이어가 그만큼 유리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벤트의 존재는 게임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 리플레이성도 증가시킵니다. 이벤트가 많이 터지는 게임과 잘 안 터지는 게임은 아예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게임의 모든 요소는 테마를 잘 살렸습니다. 산 맨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철로를 놓고 역을 건설합니다. 역 이름은 당연히 실제 존재하는 역의 이름과 동일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일이 수월하고, 날씨가 안 좋으면 일이 안 되지요. 대기업은 중소기업인 플레이어들을 괴롭히고, 기차를 사서 활용하면 더 많은 인력이 공사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기에 추가 일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플레이 시간이나 깊이 또한 제 기준에선 적당합니다. 게임이 직관적이어서 설명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잔룰도 계약 카드를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해당 인원 수마다 행동 칸의 수가 다 달라지기에 1인에서 5인까지 다 잘 어울립니다. 특히 일꾼 놓기 유로게임 치고 솔플이 아주 훌륭한 것으로 이름나있는데, 이벤트의 존재 때문에 매 게임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나무로 된 큐브도 묵직하여 손에 잘 잡히고, 2판에선 일꾼이 미니어처로 되어있어 집어 놓는 맛도 좋습니다.



다만 무거운 전략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다채로운 전략을 구상하며 진행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승점을 얻는 수단이 철로, 역, 계약 카드 뿐이어서, 계약 카드와 기차의 특수 능력을 제외하면 모두 똑같은 길을 가게 되죠. 아그리콜라나 카베르나 같이 누구는 농사를 짓고, 누구는 동물을 모으고, 누구는 모험을 떠나는 다양성은 찾기 힘듭니다.

이게 이 게임의 최대 약점이고, 헤비 게이머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특히나 테마가 철도인지라 무거운 게임을 기대하고 접근하기 쉽고, 그만큼 실망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벤트와 날씨 때문에 가끔 이상한 게임이 되기도 합니다. 날씨는 계속 흐리고, 이벤트는 계속 터지면서 초반 철로와 역을 다 완성해버려 플레이어들을 난감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게임은 결국 자원만 쌓이다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끝나더라고요. 그런 의외성이 나름의 재미라면 재미겠지만...

게임 내에 자체 확장이 하나 들어있긴 한데, 확장으로 해도 게임의 큰 틀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그 외에도 역 카드만 바꾼 작은 확장들이 소량 발매가 되었는데, 구해서 해보진 못했네요.



깔끔하면서도 다양한 변주로 플레이어들을 즐겁게 하는 중간 무게의 유로게임입니다. 색다른 철도 게임을 찾으시거나, 이런 류의 게임을 즐겨 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선 유독 언급이 안 되는 게임 중 하난데, 묻히기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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