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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된 사진 중 일부의 출처는 보드게임긱입니다.


칸반은 일본어로 마분지 카드를 뜻하는데, 일본의 자동차 회사인 도요다에서 시작된 생산 시스템을 일컫는 말입니다. 미리 재원을 많이 공급해두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필요한 만큼의 재고를 사용한 후 딱 그만큼을 바로 공급받는 것이지요. 이 시스템에 '마분지 카드'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사용한 재원을 카드에 적어 적재 파트에 넘겨주면, 적재 파트에서 그걸 보고 재원을 채워넣었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 도요다는 불필요한 재고를 최소화하였고, 생산품의 가격을 더욱 낮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 시스템은 공장 뿐 아니라 일반 회사 등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비딸 라세르다의 2014년 게임인 칸반은 여기서 테마를 가져왔습니다. 자동차 공장에 갓 입사한 신입의 입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게임이지요.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2041406/kanban-automotive-revolution?size=large


이름 : Kanban: Automotive Revolution

디자이너 : VItal Lacerda

제작년도 : 2014

인원 : 2-4인

연령 : 12세 이상

시간 : 90-120분

분류 : 일꾼 놓기, 액션 포인트

보드게임긱 순위 : 198 (2016/10 기준)


플레이어들은 자동차 공장의 신입 사원으로서 자신이 가치있는 인재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는 칸반 카드를 통해 부품을 확보하고, 자동차 디자인을 보완하고, 시험용 차를 생산한 후 그걸 개인 차고에 가져와 시험 운행을 하며 이루어집니다. 이 모든 과정은 산드라라는 악덕(?) 관리인에 의해 평가되지요.

게임은 복잡한 편으로, 여기서는 간단히 핵심만 설명하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일꾼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꾼 페이즈 때 순서대로 일꾼을 놓고, 행동 페이즈 때 순서대로 일꾼을 놓은 자리의 행동을 시행합니다. 게임 종료 조건을 만족할 때까지 이를 반복합니다.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2306394/kanban-automotive-revolution?size=original


게임엔 총 5곳의 부서가 있으며, 한 구역엔 총 2곳의 일꾼 놓는 칸이 있습니다. 일꾼을 놓은 곳이 어디냐에 따라 2 액션 또는 3 액션을 사용할 수 있으며, 2 액션 칸 -> 3 액션 칸의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마지막 부서에만 1 액션, 2 액션 칸이 있습니다) 각 부서에 일꾼을 놓으면 그 부서에 해당하는 주 행동을 하거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1. 시험 및 혁신 부서 : 디자인 부서에서 얻은 불완전한 디자인을 물류 부서에서 얻은 부품을 활용하여 완성하거나, 조립 부서에서 생산한 차를 차고로 가져옵니다. 기타 부서에서 확보한 리소스를 승점으로 치환하는 곳입니다.

2. 조립 부서 : 물류 부서에서 얻은 부품으로 차를 생산합니다. 차를 충분히 생산하면 시험 및 혁신 부서로 차를 보내 나중에 차고로 가져올 수 있게 해줍니다.

3. 물류 부서 : 칸반 카드를 제출하여 부품을 공급받은 후 그걸 개인 사무실로 가져옵니다.

4. 디자인 부서 : 디자인들을 개인 사무실로 가져옵니다.

5. 관리 부서 : 1~4 부서 중 하나를 골라 그 구역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단, 사용 가능한 액션이 적습니다.

게임 흐름은 보통 물류 부서와 디자인 부서에서 부품과 디자인을 받은 후, 조립 부서에서 차를 생산하여 시험 및 혁신 부서로 보내고, 시험 및 혁신 부서에서 차를 차고로 가져오거나, 디자인을 완성하며 승점을 얻게 됩니다. 물론 중간 중간 교육도 충분히 받아야 하고, 산드라의 눈치도 봐야 하며, 회의에도 참석해야 하죠.



게임을 진행하며 다양한 보너스 토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액션을 사용하지 않고 교육을 받게 해주는 책, 아무 부품으로나 대치할 수 있게 해주는 바우처, 필요 시 추가 액션을 하게 해 주는 추가 시간, 회의 시 발언권을 주는 의자가 그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게임 진행에 큰 영향을 줍니다.

교육은 각 부서에서 액션 또는 책을 소모하여 올릴 수 있으며, 일정 이상의 교육을 받으면 인증을 받게 됩니다. 인증을 받은 부서에 따라 차고나 디자인, 부품 놓는 칸을 늘려주는 등의 보너스를 줍니다.

산드라는 더미 일꾼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일꾼 페이즈 때 자신의 턴이 되면 자동으로 다음 부서의 빈 칸으로 이동하고, 행동 페이즈 때 그 부서에서의 행동을 한 후, 플레이어들의 교육 수준에 따라 평가를 합니다. '상냥한' 산드라로 플레이하면 가장 교육을 잘 받은 플레이어에게 보너스 승점을 주고, '사나운' 산드라로 플레이하면 가장 교육을 못 받은 플레이어의 점수를 깝니다. 산드라가 한 바퀴를 돌면 주간 결산이 발동되고, 차고에 있는 차에 따라 승점을 얻습니다.

회의는 생산된 차를 어느 정도 차고로 옮기면 자동으로 발동되며, 이 게임에서 가장 많은 승점이 오가는 단계입니다. 기존에 공개되어 있던 목표 카드 및 자기 손에 있는 목표 카드 중 하나에 자신의 의자를 올려놓은 후, 달성한 만큼 승점을 받습니다. 돌아가면서 의자를 놓아 발언권을 행사하는데, 남들이 이미 선점한 목표 카드는 점수를 덜 받거나 아예 못 받게 되므로, 어디에 먼저 의자를 올릴 지 눈치 싸움이 발생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자를 원하는 만큼 놓고 패스했다면 각자 손에서 새 목표 카드를 하나씩 내려놓은 후, 이어서 진행합니다.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2030184/kanban-automotive-revolution?size=original


게임은 회의 3번 및 주간 결산 2번, 또는 회의 2번 및 주간 결산 3번이 발동됐을 시 종료되며, 게임 종료 시 얻는 보너스 점수 (바우처, 책, 추가 시간, 의자, 교육 상태, 차고의 차, 완성한 디자인, 게임 종료 시 목표) 를 모두 계산하여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칸반은 아주 무거운 유로게임이면서도, 테마가 짙게 묻어나오는 게임입니다. 비딸 라세르다의 게임은 블라다 츠바틸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룰이 복잡하고 잔룰이 많은 대신, 게임을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가 있고 그 테마를 굉장히 잘 입힙니다.

칸반에서 플레이어들은 자동차 공장주가 아닙니다. 이제 막 취직한 인턴들이지요. 이들은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아 매일 산드라한테 조인트 까이면서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는 '사악한' 산드라로 플레이할 때 가장 와닿는데, 산드라가 가게 될 부서에 교육이 안 되어있는 플레이어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가는 광경을 꽤나 흔히 볼 수 있거든요.

디테일도 잘 살아 있습니다. 한 액션은 게임 내에서 3시간으로 표현되고, 야근을 하더라도 하루 12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습니다. 책을 사용하면 시간을 소모하지 않아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퇴근 후 책을 읽어서 그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입니다. 회의에서 한 안건에 여러 명이 발언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승점이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발언을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는 산드라가 그 안건에 질렸기 때문입니다. 관리자 입장에선 당연하지요. 이런 사소한 점들이 게임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게임은 룰이 어려운 만큼이나 깊이가 깊은 전형적인 게이머스 게임입니다. 일꾼을 놓을 수 있는 칸이 빡빡하고, 목표 달성 단계인 회의에서 점수를 얻지 못하면 크게 뒤쳐지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적인 플레이를 필요로 하지요. 물론, 그 전략을 성공시켜 점수를 쭉쭉 뽑아내게 되면 커다란 만족감을 얻게 됩니다.

게임의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부서간의 관계인데, 각 부서는 거미줄처럼 엮여있어 한 부서에서 특정 행동을 하면 다른 부서에서 할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이는 작가의 다른 작품인 갤러리스트가 연상되는데, 각 부서에서 플레이어들이 하는 행동에 따라 상황이 바뀌기 때문에 (특히나 조립 부서에서 생산되는 차를 시험 및 혁신 부서에서 가져와야 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상호 작용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남에겐 최소한의 이득이 되면서 나에겐 최대한의 이득이 될 행동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항상 즐겁습니다.

또 놀라운 점은 게임의 플레이 시간이 의외로 짧다는 겁니다. 게임의 종료 조건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가 게임에 익숙해지고 장고를 하지 않는다면 90분 내로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인원이 적어지면 회의가 빨리 돌아오고, 많아지면 주간 결산이 빨리 다가오기 때문에 인원 수에 따른 시간 차이도 크지 않습니다. 긱 웨이트 4.27짜리 게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에요.

90분~120분 사이에 이 정도의 무게감과 재미를 주는 게임은 드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칸반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2266584/kanban-automotive-revolution?size=original


물론 이 게임은 모두를 위한 게임이 아닙니다. 어렵고 복잡한 게임이니만큼 접근성은 많이 떨어집니다. 첫 플레이라면 룰 설명만 30분이 넘게 걸리지요. 잔룰도 많고 점수 계산법도 조금 꼬여 있는지라, 누군가 룰을 완벽히 익히고 있지 못하다면 게임 시간이 한없이 늘어질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긱에는 2인 게임이 7시간 30분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즉 게임에 익숙한 룰 마스터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야 즐거운 세션이 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또 하나의 작은 단점은, 2인 게임이 3~4인에 비해 회의가 조금 심심하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회의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는 딱히 단점이라 할만한 점이 없습니다. 무게감 있는 전략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이 이 게임을 안 좋아하시리라고 생각하기가 힘드네요.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2266583/kanban-automotive-revolution?size=original


테마가 강하면서도 탄탄한 전략 게임을 찾으신다면 반드시 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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