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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건의 희생자를 늘렸던 것은 심각한 인력부족과 이에 따른 과중한 업무 부담, 그리고 이 부담 속에서 이루어진 '편법'이었다."
저도 다음달에 예비군 훈련 가야하는데 참 슬프면서 무서우면서 화가 나는 사건이 터졌네요. 위의 기사가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가장 잘 정리했다고 봅니다.
...총구 방향이 조금만 틀어지거나 사수가 총을 들고 일어서려 하면 거친 욕설과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주먹이나 군홧발이 날아올 만큼 사격장의 군기는 엄정하다. 하지만 예비군 사격장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번 참사가 발생한 사격장에 올라간 인원은 중대장급 간부 3명과 병사 6명이 전부였다. 중앙통제탑에 있던 선임중대장 1명을 제외하면 중대장 1명이 10개 사로를 통제했다. 병사 6명은 1인당 3~4개 사로를 맡아 탄알집을 지급하고 탄피를 회수했다. 현역병 조교와 예비군 대원이 1대 1로 편성되더라도 현역병 조교에게 반말을 하고 무시하기 일쑤인 예비군 훈련 현장에서 병사 1명이 3~4개 사로의 예비군들을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사격장 사로 통제에 나선 간부와 병사들은 이날 사격이 계획되어 있던 인원들을 소화해 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주간 6발, 야간 3발 나누어 사격하게 되어 있는 지침 대신 안전을 고려해 야간 사격을 생략했을 것이고, 10발 묶음씩 20발 단위 1상자로 포장된 소총탄 수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규정된 3+3 또는 3+6발 탄창 지급 규정 대신 10발 탄창을 한 번에 지급했을 것이다.
총기가 쇠사슬로 완전히 고정이 되어 있었는지 손으로 만져보고 확인하는 절차도 무시됐을 것이다. 1명의 병사가 3~4개의 사로를 통제해야 했고, 사로에 투입된 사수와 부사수 외에도 각 조당 20명씩 8개조가 사격장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손으로 총기 고정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육안으로 대충 흩어본 뒤 실탄을 지급했고, 결국 이것이 사건으로 이어졌다. 현장 요원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 속에서 일처리를 빠르게 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던 것이 희생자를 더 키웠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누가 미친 놈이었다느니, 누가 훈련을 대충 진행했다느니 라는 식으로 "사건 관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법원에서나 해야할 일이지 언론과 정부가 해야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시스템"을 어떻게 고치고 수정할지를 스스로 반성해야 옳습니다.
동원사단이나 향토사단이 겪고 있는 병력 부족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예산'이다. 올해 국방예산은 약 37조 6천억 원 가량이다. 이 예산으로 약 60만 명의 현역 군병력을 유지하는데, 향토사단과 동원사단에 동원되는 약 270만 명의 1~4년차 예비군 전력을 유지하는데 배정되는 예산은 전체 국방예산의 0.4%에 불과하다.
저는 평소에 군사비 지출을 더 줄여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전투기 사고 미사일 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데, 그 돈으로 사회 안전망을 더 튼튼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장비를 사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지금 한국은 그보다 급한 것이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하고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사도 이를 다루는 사람이 제정신일 수 없다면 소용없으니까요. 위의 기사처럼 건설적인 원인 분석 기사가 많이 나와서 사람들의 이해가 깊어지고 입법부와 행정부가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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