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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cott*


처음 헌법 책을 접한 것은 몇 년 전입니다. 부끄럽지만, 대학교때까지도 우리 나라 헌법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여러가지로 답답한 한국 사회를 몇 년간 지켜보다가 겨우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때 "법"과 "법을 다루는 사람"에 대해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준 인상적인 드라마 한 편을 보았습니다. 드라마 "신의 저울"입니다.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있는 걸까? 


"법을 통해서 진실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눈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법의 잣대로 진실을 파악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


- SBS 드라마 "신의 저울"


신의 저울 (6disc) - 10점
김유미 외 출연/진현엔터테인먼트


신의 저울은 굉장히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한국 드라마 중에서 몇 개 안봤지만 최고 중의 하나입니다. 짜임새 있는 구성이나 배우들 연기, 스토리와 메세지까지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이 드라마는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법"을 "권위"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대표하는 대사가 "법대로 하자."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미안함을 느낄 상황에서 저런 대사를 당당히 던지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어떤 사고 방식이 있을까요? 마치 "법은 우리 중에 누가 잘못한 것인지 판단해줄 것이다"라는 말 같습니다.


전 이런 생각을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이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사건의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지요. 그 당사자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법이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진실을 찾아내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법조인"들입니다. 그들이 진실을 찾아냈을 때, 그 책임을 판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글로 적힌 법"인 겁니다.


영화 <살인의 해부>의 한 장면 Columbia Pictures


"법"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면, 변호사, 검사, 판사들은 왜 존재하며, 그리고 하나의 판결을 확정하기 위해서 재판을 1심, 2심, 대법원까지 세 번에 걸쳐서 진행할까요? 그것도 부족해서 여러명의 배심원까지 동원하죠. 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왜 필요할까요?


"대법원까지 가서 판결이 확정된 사건이라며. 1심, 2심, 대법원. 판사, 검사, 변호사가 몇인데. 뭐, 그 사람들이 바보야? 아니 대한민국 법이 그렇게 허술해?"

"법이야 쫀쫀하지. 쫀쫀하고 촘촘하지. 그걸 집행하는 인간들이 문제지."

"오빠-"

"알아. 내 얼굴에 침 뱉긴거. 나도 안다고. 하지만 너도 장용하 사건 기록 한번 봐봐. 1심, 2심 변호사들이 어떻게 변론을 했는지. 검사, 판사는 또 어떻게 했는지.

어머니 목숨값 3천만 원. 그걸 1심 변호사가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놓고 뭘 했는지 봐, 보라고. 나 같으면 벌써 칼을 입에 물고 죽든, 누굴 죽이든 했다. 준하처럼 우직하게 바보처럼 고시공부 못한다.

부자들한텐 목걸이고 가난뱅이들한텐 밧줄인 그놈의 잘난 법. 난 그거 하나 믿고 싸울 생각, 안 한다."


- 드라마, "신의 저울"


"그놈의 잘난 법" 하나 믿고 싸우고 있는 사람법조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죠. 자신의 이익이나 사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에는 상당히 많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법조인도 예외가 아니죠. 어쩌면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약해지거나 강해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국가의 모든 활동과 공동체 생활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런데 정치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 절차를 어기면서 이를 정당화하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헌법은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 이에 참대못한 국민들은 정치권력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렇듯 국민이 저항하는 것은 헌법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백문식, "알기 쉬운 대한민국 헌법"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학생 시위 사진 ⓒ 이인영 홈페이지


법은 "헌법 > 법률 > 명령 > 조례 > 규칙"의 단계를 이룹니다. 그 중 가장 최고법인 "헌법"법 위의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법은 헌법을 지켜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법이 헌법을 지켰는지 판단하는 헌법재판소가 있는 거죠. 다시 말하면, 헌법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비롯해서, 그 나라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과 방법을 정해놓은 것입니다.


헌법은 그 나라의 핵심 가치들만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매우 짧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작은 단행본으로 쓰면 50쪽도 안됩니다. 누구나 몇 시간만에 다 읽을 수 있죠. 하지만 저를 비롯해서 다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헌법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원칙과 상식 그리고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법대로 하면 된다. 깨끗하지 못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헌법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을 모르면 자기의 권리를 지레 포기하거나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우 리는 헌법을 통해 저마다 국가에 바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가가 국가답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시•도지사와 공무원들에게 나라살림을 잘 하라고 다그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똑똑한 국민으로서 권리를 내세우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 백문식, "알기 쉬운 대한민국 헌법" 머리말 중에서


저는 국민들이 헌법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맞서 싸우기까지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최소한 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자신의 권리를 지레 포기하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50페이지도 안되는 헌법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헌법을 읽지 않을까요?


이오덕 선생님은 "어렵게 써놓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한문글자를 가장 많이 써 놓은 곳이 법률의 조문입니다. 우선 헌법만 해도 그렇지요. 온통 한자말과 일본 말법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아주 새까맣게 한문글자로 써 놓았으니, 누가 이 헌법을 읽겠습니까? 읽어도 알 수 없으니 '법이란 본래 이렇게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라고 아주 치부해 버리고는 읽다가도 내던져 버리지요.


법률의 조문이란 정말 이렇게 어려운 말로 써야 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이나 머리 싸매고 읽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은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법을 바로 지키고, 법이 바로 서고, 사회가 밝아집니다.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하는 법을 알 수 없는 글로 써 놓았다면 그 글이 잘못되었으니 마땅히 고쳐야지요. 쉬운 우리말로 누구든지 읽을 수 있게 모든 법률의 조문을 다시 써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됩니다.

더구나 헌법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 되는 틀을 짜 놓은 법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국민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습니까?"


- 이오덕, "우리말로 살려놓은 헌법"


아서 코난 도일의 < 돌아온 셜록 홈즈 >에 나오는 "춤추는 인형 암호" (출처 : 위키미디어 공용)


법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법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만 알고 있어야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께서 어렵게 쓴 헌법을 우리말로 다시 고치신 것은 일종의 권력에 대항하는 훌륭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헌법과 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도와주는 제가 산 책 세 권을 소개합니다.


우리말로 살려놓은 헌법 - 10점
이오덕 지음/고인돌
알기 쉬운 대한민국 헌법 - 10점
백문식 지음/정인출판사
대한민국 헌법 - 10점
정종섭 지음, 김중만 사진/금붕어


추천하는 건, 먼저 이오덕 선생님의 책으로 헌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주욱 읽고, 그 다음 백문식 선생님의 책으로 조항 하나 하나에 대한 쉬운 설명을 재밌게 읽어보는게 좋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책은 우리말로 헌법을 다시 쓰셨기 때문에 끝까지 읽어나가기 쉽고, 백문식 선생님의 책은 헌법의 각 조항들이 한국 사회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책은 제가 처음 샀던 헌법 책인데, 신기하게도 이 책은 "꽃 사진"과 "대한민국 헌법"을 나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꽃과 헌법규정은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자기완결적이면서 동시에 외부세계로 열려 있다. 그러면서 열림이 자기 해체로 가지 않고 자기존재의 고집을 가지고 있다.


꽃과 헌법규정이 가진 그 열림자기고집서로간의 소통긴장이 함께 있는 모습을 이번 작업을 통해 전하고 싶다. 우리의 두 번째 작업이 의사소통의 장에 들어오는 모든 이와 함께 나눔의 의식을 치르고 싶은 이유이다."


- 정종섭과 김중만, "대한민국 헌법"


Photo by Patr!c!a

사실 이 법학 교수와 사진 작가의 헌법 책은 두 번째라고 합니다. 첫번째는 "대한민국 헌법을 읽자"인데 이 책은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여기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개글을 살펴보니 그 책은 우리 일상과 헌법을 연결시키려한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매우 끌리는 내용이라 사서 읽게 되면 이 목록에 추가시킬 것 같습니다. 아마 조만간 지르겠네요.


이 책은 한 쪽면에는 헌법 조항이 한글과 영문으로 나와있고, 어려워할 부분에 대한 설명이 짧지만 친절하게 달려있습니다. 다른 쪽면에는 아름다운 꽃의 사진이 담겨있습니다. 꽃이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만큼 아름다운 조화가 느껴지더군요. 딱딱하다고 느끼는 "법" 곁에 "꽃 한 송이"가 놓여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헌법에 친근감이 생깁니다. 신기한 책이죠.


마지막으로 제가 헌법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했던 대한민국 헌법의 "앞글(전문)"을 인용하면서 소개글을 끝내려고 합니다. 헌법 원문이 아니라 쉽게 풀어쓴 글로 인용합니다.


아주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은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참된 얼과


옳지 않은 일에 맞버틴 419민주정신을 이어받는다.


조국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개혁하고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꾸준히 힘쓰며


바른 뜻바른 길과 겨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굳게 뭉쳐,


사회의 온갖 나쁜 일과 그릇된 생각을 깨뜨려버리고,


자율과 어울림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의 기본질서를 더욱 굳게 다진다.


그리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테두리 안에서


저마다 기회를 골고루 누리면서, 능력을 한껏 떨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한다.


반드시 국민의 생활 수준을 고르게 높이고


나아가 변함없는 온 누리의 평화와 인류 번영에 다 함께 이바지함으로써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자유와 행복을 오래도록 마음껏 누릴 수 있게


온힘을 쏟을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1948년 7월 12일에 만들어진 뒤


여덟 차례에 걸쳐 손질한 헌법을


이제 국회에 의결하여 국민투표로 바르게 고친다.


1989년 10월 29일


- 백문식, "알기 쉬운 대한민국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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