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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에서는 지금에 초점을 맞추지요. 각 개인의 지나간 일을 깊이 있게 탐색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참가자가 여기에서, 일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초래했던 바로 그 행동들을 똑같이 재현한다고 생각합니다."
- 어빈 D. 얄롬, "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
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 - 어빈 얄롬 지음, 이혜성.최윤미 옮김/시그마프레스 |
요즘 나는 여러명들과 함께 대화하는 공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여러명이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즐겁게 이끌어가려고 애쓰는 분위기, 너무 힘들다. 이야기가 뱅뱅 돌고, 가벼운 이야기 밖에 못하고 눈치보는거 참 피곤하다.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엔 4명 이하가 좋다. 가장 좋은 건 역시 단 한 명과의 1:1대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집중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거, 그게 가장 좋다.
그렇게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소리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주고 받고, 진정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기에 내가 대화법과 상담학, 그리고 심리학에 이토록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심리상담학 분야를 둘러보면서 집단치료라는 분야는 사실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한 사람과도 상담하면서 대화하며 치료하기 힘들텐데 어떻게 여러명들을 한꺼번에 다룬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빈 얄롬 교수의 "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어빈 얄롬 지음, 이혜성, 최윤미 옮김, 시그마프레스)라는 책은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집단치료의 핵심을 소설로서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보여주었다.
"사람은 자신의 사슬을 풀 수 없으나
다른 친구들을 자유롭게 풀어 줄 수는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심리 치료란, 대부분 대인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다. 그래서 상담자는 내담자와 그 누구보다도 솔직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그 관계에서 드러나는 내담자의 대인 관계 방식을 포착해서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한다. (이런 것을 얄롬은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방식이라고 명명했고, 그의 소설 "카우치에 누워서"에서 매우 세밀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집단 치료는, 매우 다양한 집단원들이 서로 관계맺는 (치료자 마저도 포함해서) 방식이다.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가족에게 보여주는 내 모습이 있고, 친구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있으며, 처음보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내 모습이 있다. 이처럼 나의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면이 있고, 만나는 사람이 다양할 수록 그런 내 자신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 현상이 이 집단 치료에서 일어난다고 느껴졌다.
내 자신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를 치료자와 다른 집단원들의 도움으로 살짝 한 발짝 물러서서 제 3자로서 바라볼 수 있는,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공간이랄까? 더 나아가서 위에서 언급한 니체의 말처럼, 치료자만이 아니라 모든 집단원들이 서로를 치료해주고 치료를 받는다.
집단심리치료가 어쩌면 사회속 다양한 사람들과 대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을 치료한다는 측면에서 심리 치료의 진수를 보여주는 치료방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너무 고마운 책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여러 고슴도치들이 서로의 체온을 주고 받으며 추위를 덜어보려고 아주 가까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곧 고슴도치들은 자신의 몸에 있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서로를 찌르게 때문에 다시금 떨어져있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온기가 필요해지면 다시 모였다가 가시에 찔리게 되면 도로 떨어졌다가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기들이 편안하게 참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처럼 인간들도 삶의 공허감과 단조로움을 없애려는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서 모였다가도, 그들 사이의 불쾌함과 혐오스러움 때문에 다시금 서로 떨어지게 된다."
-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우화'
또한 소설과 동시에 평행하게 진행하며 보여주는 실제 쇼펜하우어의 삶의 기록들은 오랫동안 그를 그저 삶을 부정하는 염세주의자라고만 배웠던(실제로 그의 저서들을 한 줄도 읽어보지 않고서) 나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발견이었다. 내가 청소년기에 사춘기를 지나면서 고민했던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하여 나보다 몇 백배, 아니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뇌했던 쇼펜하우어. 내 안에도 쇼펜하우어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의 삶의 기록들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약점, 그리고 결함이 바로 자신 속에 있는 약점과 어리석음, 결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관대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가 속한 인류의 약점이므로 우리 내부에 똑같은 약점을 묻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의 결함을 파헤쳐서는 안 된다."
-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201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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