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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iklas Morberg


"2007년 2월, 겨울이 막 끝나갈 무렵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장편제작연구과정이라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과정이 신설된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장편제작연구과정은 이름 그대로 장편 제작에 실제 투입되어 애니메이션 제작 실무 노하우를 배우는 과정. 


이 소문은 벌써 1년 전부터 학생들 사이에 공공연히 떠돌고 있었지만, 제작연구과정에 선뜻 지원하겠다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고 싶다는 열망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요란하게 부딪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제불찰 씨 이야기"


제불찰 씨 이야기 - 10점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1기 지음, 황희연 엮음/씨네21북스


하고 싶다는 열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내가 상담을 할 수 있을까? 내게 상담가가 어울릴까? 어떤 직업이나 진로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죠.


어떤 일에 뛰어드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대학교 때 동아리에서 공연을 준비하면서 "내가 정말 무대에서 노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열망은 늘 함께 공존했었습니다. 그 둘의 크기가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하물며 수 억원의 돈을 들여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드는 일이야 오죽할까요. 좋은 기회였음에도 지원하는 학생이 적었다는 게 이해가 갑니다.


Photo by Liz Lawley


참 많은 사람들이 자유라는 녀석을 원합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자유는 늘 등 뒤에 책임을 감추고 있죠. 내가 원하는 자유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꽤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 많습니다. 우선 이 제불찰 씨 이야기는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을 최대한 많은 학생이 경험하길 원했기 때문에 감독이 다섯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감독이 다섯 명이기 때문에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다섯 명의 감독과 한 명의 프로듀서가 내놓은 의견 중에는 물론 쓸 만한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캐릭터와 이야기에 연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취향이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다보니, 어느 순간 제불찰은 하나의 성격을 갖지 못하고 불분명한 캐릭터가 되어있었다.


...감독들의 갈등이 점점 극에 달했다. 누군가의 의견은 자주 채택되고, 누군가의 의견은 자주 무시되었다. 서로의 불만이 높아졌다. 자신이 내놓은 의견이 회의에서 자꾸 무시를 당하자 몇몇 감독들이 점점 작품에 무심해지기 시작했다.


...시나리오에는 '민주주의'가 통용되지 않는다. 이 의견과 저 의견이 부딪히고 있으니 중간의 의견으로 가자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절충'이라는 해법도 통용되지 않는다."


-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제불찰 씨 이야기"


시나리오에는 민주주의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독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방향을 결정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일관된 선택"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선택이란 결국 무엇을 버릴 것인가입니다. 소설도, 영화도, 글도 그렇죠.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쓰면 초안을 마구 휘갈겨 쓰고, 그 다음에는 살을 마음껏 붙입니다. 그 다음에는 버릴 것을 결정합니다. "이 문장이 여기 필요한가? 이 문장이 전체 내용 흐름과 이어지나? 이 단어가 여기 필요한가?" 묻습니다. 원하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초점을 정확히 맞추고 나머지를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 카메라의 심도를 조절하듯이.


Photo by Michael Dales

버리는 것의 중요성은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죠. 이에 대하여 인터넷 상에서도 널리 퍼진 워렌 버핏의 유명한 일화가 있죠. (실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버핏 : "25가지 목표를 다 적었으면, 이제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5가지 목표에 동그라미를 쳐보게." 


플린트는 이내 곧 가장 중요한 5가지 목표에 동그라미를 쳤다. 플린트는 이제 가장 중요한 5가지 목표로 구성된 목록과 덜 중요한 20가지 목표로 구성된 목록을 갖게 되었다. 


플린트 : "이제 제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5가지에 집중하겠습니다." 


버핏 : "그럼 동그라미를 치지 않을 나머지 목표들은 어떻게 할건가?" 


플린트 : "제가 동그라미를 친 5가지야 말로 제가 집중해야 할 목표들입니다. 5가지 목표들에 제가 가진 시간의 대부분을 투자하고, 나머지 20가지도 놓칠 수 없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노력해서 이뤄야겠죠." 


버핏 : "아니야, 그게 아니야. 자네는 지금 실수하고 있는거야. 자네가 동그라미를 친 5가지 목표 외의 목표들은 어떻게든 버리고, 피해야 할 목표들이야.


자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5가지 목표를 전부 달성하기 전까지는 나머지 20가지 목표들에 대해서 절대 어떤 관심과 노력도 기울여서는 안되네."


“No. You’ve got it wrong Steve. Everything you didn’t circle just became your ‘avoid at all cost list’. No matter what, these things get no attention from you until you’ve succeeded with your top 5.”


- 한글 출처 : [유명인명언] 워렌버핏의 유명한 일화

- 영문 출처 : Warren Buffett’s 5-Step Process for Prioritizing True Success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느 것도 못하죠. "버릴 줄 아는 사람"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선택과 집중인거죠. 지금 내가 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건 지금 "버리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중요해서 버릴 것이 없나요? 그래도 버려야 합니다. 그게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장편 애니메이션 제불찰 씨 이야기" 책 리뷰는 다음편에 좀 더 이어 써보겠습니다.


< 연속된 글 목록 >

함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 (2) - 제불찰 씨 이야기 - 1

함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 (1) - KAPA 필름의 제작 일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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