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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변경


저는 작년(2014년) 물리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올해(2015년) 상담대학원에 석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삶의 방향을 크게 꺽은 셈이죠. 제가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니 "자기 삶의 진로"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가 진로를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경험한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너의 진로 변경의 과정이 알고 싶다."


이 글은 "심리상담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혹은 "심리상담가"란 어떤 직업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제가 진로를 바꾼 과정을 돌아보면,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진로의 방향을 찾던 시기

2. 찾은 방향을 검토하고 결정한 시기


이 글에서는 뒤쪽 시기에 큰 도움을 받았던 책과 드라마를 소개할 것입니다. (앞쪽 시기에 대한 글은 예전에 진로 고민을 하고 있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리한 걸 수만휘 카페에 올렸었는데, 시간나면 다시 좀 더 다듬어서 블로그에 올려보겠습니다.)


제가 상담이란 분야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관련 정보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상담사는 어떤 직업이며, 어떻게 하면 상담가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가장 알고 싶었던 "상담가는 직업 속에서 어떤 일들을 겪게 되는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다녔습니다. 저는 왜 저런 정보를 찾아다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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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제가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은 "물리학"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배운 "물리학"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물리학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대학교 2학년 첫 전공 수업으로 일반 역학 수업을 들으면서 교재의 첫 장이 온통 수학으로만 가득 차있던 것에 경악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제가 생각하던 물리와 대학교에서 실제로 배우게 된 물리는 굉장히 달랐던 겁니다.


다행히 그 생소한 물리가 싫지 않았습니다. 특히 양자 역학은 재밌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또 다시 처음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겪게 된 것이 다름을 경험합니다. 다만 이 때는 깨달음이 좀 늦었습니다. 대학원 생활 2년이 넘어서야 느꼈으니까요.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랐던 것인지 분명하게 알게 된 때는 졸업할 때쯤이었습니다. 많이 늦었죠.


깨달은 것은 "공부"와 "연구"의 차이였습니다. 전 단순히 대학원을 더 깊은 공부를 하는 곳으로 인식했던 것이죠. 하지만 연구는 공부와 매우 달랐습니다. 공부는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가르쳐주는 책이 있지만, 연구는 답과 풀이를 가르쳐주는 그 누구도, 어떤 책도 없습니다.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내고 다른 이들을 설득할 근거를 채워야하는 과정이었죠.


안타깝게도 "연구"는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공부는 좋아하지만 연구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죠.


이 같은 경험 덕분에 저는 상담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자 마자, 가장 먼저 "제가 생각하고 있는 상담가"와 "실제 상담가"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고 한 것입니다. 앞서 말한 질문, "상담가는 직업 속에서 어떤 일들을 겪게 되는가?"이 이 간격을 좁히고 막연한 환상을 없에기 위한 시도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우선 얄롬의 책들과 미국드라마 "인 트리트먼트(In Treatment)"였습니다. 어빈 D. 얄롬실존주의 심리학을 체계화하는데 큰 공헌을 한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유명한 심리상담가입니다. 너무도 감사하게도 얄롬은 훌륭한 상담가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작가입니다. 그는 너무도 좋은 심리상담 책들을 참 재밌게도 많이 썼습니다. 여기서는 그중에서 심리상담사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준 책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카우치에 누워서 - 10점
어빈 D.얄롬 지음, 이혜성 옮김/시그마프레스


카우치에 누워서


제가 이전에 리뷰한 책(2015/03/07 - 카우치에 누워서 (어빈 D. 얄롬))이기도 한데, 이 책이 저에겐 가장 보물같은 책이었습니다. 매우 재밌는 소설이면서도, 제가 알고 싶었던 "상담가는 상담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까?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상담가를 지탱해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주고 있었습니다.


소설 시작부터 상담학계에서 무조건 금기시하는 "내담자와의 성관계"에 대해 고민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책의 제목 "Lying on the couch"에 숨어있는 다른 의미(카우치에 누워서가 아니라 카우치에서 거짓말하기)를 다시 던집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나쁜 의도로 접근해서 거짓말을 해나갈 때, 상담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책 전체가 답을 해갑니다. 소설 자체도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입니다.


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 - 10점
어빈 얄롬 지음, 이혜성.최윤미 옮김/시그마프레스


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


이 책도 한 번 리뷰했던 책입니다. (2015/03/07 - 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 (어빈 D. 얄롬)) 이 책은 집단 상담이란 무엇이며, 집단 상담이 어떤 치료적 힘이 있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어떻게 1명에게만 집중하기도 힘든데 여러명을 동시에 상담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읽고난 후, 집단 상담은 개인 상담과는 아주 다른 방식의 치료 방식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집단 상담에서는 상담자만이 집단의 일원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에서 내부적인 상호작용에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실제 쇼펜하우어의 삶을 평행하게 서술하면서 철학이 심리치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줍니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 10점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필로소픽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이 책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던져준 소설이었습니다. 프로이트와 히스테리 연구를 함께 했던 스승격인 브로이어와 같은 시대 철학자 니체가 만났다는 가정을 시작으로 쓰여진 매우 재밌는 소설입니다.


당시 프로이트가 어떻게 정신분석을 만들어냈는지도 흥미롭지만, 이 책에서 더 흥미로운 부분은 상담이라는 장면에서는 "상담자"와 "내담자"중 누가 누구를 치료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내담자와 상담자의 경계가 어디인지 돌아보게 해줍니다.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과 심리상담은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인 트리트먼트 In Treatment (시즌 1, 2, 3)

(공식 사이트)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드라마는 어떤 "직업"에 대한 전문성이 놀랍습니다. 이 드라마 인 트리트먼트는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이 담겨져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바로 상담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는 시즌 별로 네 종류의 내담자와의 상담(시즌3는 세 종류)상담자 자신이 받는 상담까지 매 5회마다(시즌 3는 4회) 드라마 속에서 일주일이 지나갑니다. 따라서 각 내담자와의 상담이 회기가 매주 이어지면서 어떻게 치료가 진행되는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시즌 1은 9주치, 시즌 2, 3는 7주치 상담)


각 에피소드는 내담자가 상담실로 들어오면서 시작되고, 내담자가 상담실을 나가면서 끝납니다. 따라서 드라마의98%는 상담실 내부에서 주고 받는 대화 장면뿐입니다. 상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지루한 씬일 뿐이지만,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상호작용에 관심이 있는 저로서는 매 에피소드가 너무도 흥미진진했습니다. 보면서 개인적으로 스스로 치유받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물론 모두 연기입니다. 하지만 모두 전문가 감수를 거친 내용들이기에 (아마 연기도)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드라마에서 특별히 극적인 요소를 위해 거의 과장한 부분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드라마 길이 문제 때문에 회차별로 상담의 진행이 조금 빠르게 전개되었을 수는 있지만, 실제 상담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매우 다양하게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담자들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내담자와의 관계도 다양합니다.


저는 상담가가 겪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들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덕분에 상담가에 대한 환상은 별로 갖지 않을 수 있었고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현실은 또 다릅니다만)


아래 유튜브 영상은 어떤 분이 만드신 시즌 1의 맛보기 영상들입니다. 대충 드라마가 어떤 분위기인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시즌 1은 총 43편, 시즌 2는 총 35편, 시즌 3는 총 28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한글 자막 DVD로 발매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인터넷 상에 사람들이 번역한 꽤 질 좋은 자막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밖에도 도움 받은 책들이 참 많지만, 이 네 가지 작품들이 저에게는 상담자의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다른 얄롬의 책들, 에리히 프롬의 책들, 꿈에 대한 책들 등등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나씩 기회될 때마다 리뷰할 생각입니다.)


이 글이 심리상담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었다면 좋겠고, 혹시 더 궁금하신 분은 댓글이나 메일, 방명록 등으로 물어보시면 제가 가능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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