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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서 (On The Table)


 (4) 협력 게임과 경쟁 사회 - 3


우리는 얼마나 협력을 경험해봤을까?

 

한국에서 학교 성적은 대부분 "상대 평가"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들어갈 때도 그렇고, 들어가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받는 "평가"가 있다. 그 평가도 대부분 상대 평가다. 


우리는 "상위 몇%", "하위 몇%"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쓰고 있나. 이런 용어들은 "남들보다 내가 앞서야" 살아갈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경쟁을 잘 보여준다.

 

상대평가

(AFP PHOTO/Geoff Robins)

 

이런 환경에 익숙할 수록,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하며 평가하는 습관이 생길 수 있다. 즉, 환경이 <의도적 경쟁>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협력"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3년 전, 친구 3명과 함께 즐긴 "화이트 채플에서 온 편지"라는 게임이 있다. 너무 재밌어서 밤새도록 3~4판을 연달아 했었다. 이 게임은 범인 1명과 나머지 사람들이 경찰을 맡아서, 경찰 팀은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게임이다. 


보드게임 "화이트 채플에서 온 편지"  (출처: 보드게임긱)


셋이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서로의 기억과 아이디어를 주고 받으면서 수사를 진행해 나갔던 시간이 너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돌아보면 이 날의 경험이 보드게임의 세계로 깊숙히 들어온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헌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여러 명이 하는 것보다 2명이 1:1로 대결하는 것이 가장 재밌다고 하는 이야기 들었다. 이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 였는지, 외국 사이트인 보드게임긱에서도 이 게임의 베스트 인원이 2명이라고 투표 결과가 나와있다.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

보드게임 "화이트 채플에서 온 편지" 소개 페이지 (출처: 보드게임긱)


그들이 왜 2인이 좋다고 말하는지 이해는 했으나, 과거 내 경험은 이런 통계와 일치하지 않았다. 이 불일치는 어디서 온 것일까를 고민하다가, 최근에야 중요한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사람들이 협력해서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서 경쟁하는 것"을 더 쉽고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협력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우리에게 낯선 것이었다.

 

협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그 팀은 성적이 좋을까? 그럴리 없다. 


월드컵 때마다 각 나라들이 월드컵 준비를 위해 국가대표 선수들을 미리 모으는 것을 떠올려 보라. 만약 개인의 기량만 중요하다면, 경기 전 연습 따윈 필요없다. 그냥 당일날 멤버들만 경기장에 모이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국가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표 선수들끼리 함께 훈련을 하는 기간을 반드시 갖는다.

 

(출처 : STN SPORTS(http://www.stnsports.co.kr) )

 

실제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에 한국이 올라갈 수 있었던 중요한 힘 중 하나가 긴 훈련 기간이다. K리그가 진행 중이었음에도 모든 팀들이 시도 때도 없는 선수 차출을 허락했고, 그 덕분에 역대 월드컵 홈 팀들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장기간 훈련을 하며 대회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전에는 1승도 못했던 국가가 4강에 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룬다.

 

이런 협력의 논리를 최근 연구들에서도 말하고 있다. 김창준님의 "협업의 미신 5가지"라는 발표에서 "비협력적인 전문가 집단"보다 "협력적인 비전문가 집단"이 더 높은 성취를 보여주었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한다. 이는 뛰어난 사람들조차도 "협력"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팀에서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Photo by Anant Nath Sharma)

 

또 하나 협력이 어려운 이유는, 협력은 결코 그저 즐겁기만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당연히 충돌과 갈등을 일으킨다. 

 

"…오해와 왜곡은 늘 일어나는 것이며, 참여적 의사결정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다. 으르렁 지대는, 어떤 그룹이든 다양성이 있다면 존재하게 되는 당연하고도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으르렁 지대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는 그룹은 공통기반에 다다르는 길을 훨씬 잘 찾게 될 것이다."

 

샘 케이너 외, "민주적 결정방법론"(KOOFA BOOKs)

 

"으르렁 지대"라는 이 갈등 기간이 사실은 협력의 과정에서 반드시 견뎌야 하는 코스라는 것이다. 이 으르렁 지대에서의 스트레스를 견뎌야만 협력을 할 수 있다. 

 

세상에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이 으르렁 지대의 스트레스는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얻는 대부분의 스트레스가 대인관계에서 오는데, 보드게임에서조차 그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다. 이런 으르렁 지대에서 스트레스가 사람들이 협력 게임을 싫어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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