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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서 (On The Table)


 (2) 보드게임과 모임장의 무게


보드게임 모임장을 해나간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가볍게 내가 사고 한글화한 게임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느라 시작했던 작은 모임에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커졌다. 최근 다시 좀 규모를 적당히 줄였지만 지금까지도 1~2주에 한 두번 씩은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모임이 작을 때도 클 때도 둘 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임장으로서 어깨가 무겁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한 테이블 내에서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는 속도가 사람에 따라 너무 크게 차이났을 때다. 4명이 모여서 새로운 게임을 하고, 그 규칙을 설명하다보면, 셋 중 누군가는 빠르게 게임을 파악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익숙하지 않아서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연히 규칙 설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익숙치 않은 사람을 기준으로 친절하게 설명하게 된다. 그러면 간혹 설명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투정부리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정도 일은 괜찮다. 심각한 문제는 게임 규칙 이해 속도가 크게 차이날 경우다. 이럴 때, 같은 규칙을 게임 하는 내내 반복적으로 틀리는 사람이 있게 된다. 그때마다 다시 설명해주는 것 자체는 크게 힘들지 않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은 이를 답답해여기고 견디기 힘들어할 수 있다는 거다. 


(출처 Flickr)


나라는 사람은 좀 더 쉽게 설명해주면서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때문에 만약 그 사람과 내가 2인 게임을 하고 있는 상황이면 크게 힘들지 않는다. 그러나 다인 게임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도 게임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상호작용이 큰 게임일 수록,  게임의 재미가 그 사람으로인해 확 떨어지기 쉽다. 


다행스럽게도 게임 시간이 짧다면 그 힘든 시간을 짧기 때문에 견딜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게임 시간이 1시간을 넘어가는 경우 모임장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기분들이 계속 신경이 쓰여서 게임하는 내내 속이 타들어간다. 결국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두가 즐겁지 않은 시간이 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 이런 경우는 그 사람의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적절한 게임 선택하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과는 좀 더 쉬운 규칙의 게임을 선택했어야 한다.


게임의 쉽고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흔히 보드게임긱에서 보여주는 무게(Weight)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값은 그저 사람들이 투표한 값의 평균치일 뿐이다.


(출처 Flickr)


예를 들어서 무거운 게임 시리즈 중 하나인 18시리즈에서 가장 쉬운 규칙이라 할만한 1889를 보자. 개인적으로 이 게임을 18시리즈를 안해본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1시간 정도 설명을 해야한다. 보드게임긱에서 1889의 무게는 3.86이다. 그러나 그 3.86이라는 값은 아래와 같은 투표 결과로 얻어진 수치다.


Light (1) : 0명

Medium Light (2) : 2명

Medium (3) : 7명

Medium Heavy (4) : 22명

Heavy (5) : 6명

총: 37명 투표


대부분이 조금 무겁다라고 했지만, 우리는"조금 가볍다"라고 한 사람이 2명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투표값이 이상한거 일까? 아니다. 비슷한 시리즈지만 더 무거운 1862도 28명 투표중 1명은 조금 가볍다에 투표했다. 1862의 경우 무게는 4.36이다.


이번엔 반대로 유명한 크니지아의 2인 명작,로스트시티를 보자.


Light (1) : 1528

Medium Light (2) : 1006

Medium (3) : 131

Medium Heavy (4) : 11

Heavy (5) : 19

총: 2695명 투표


신기하지 않는가? 보드게임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이 게임을 가볍거나 조금 가볍다고 하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조금 무겁다(4점), 아주 무겁다(5점)을 투표한 사람이 있다는게 의외일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 1889는 조금 가벼운 게임"이며, "누군가에게 로스트시티는 무거운 게임"인 것이다. 


매번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는 모임이라면 게임 이해도가 크게 낮은 사람이 종종 찾아오게 되있다. 아는 사람들과만 모임을 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고 처음보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들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보드게임에 대한 익숙함과 이해도를 미리 알기 어렵다. 


(출처: Flickr)


따라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초청해서 보드게임 모임을 시작하고 있는 모임장이라면, 처음 온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보드게임에 대한 능숙함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간단하게는 어떤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여러 게임을 해봤다면 어떤 게임을 좋아했고 어떤 게임을 싫어했는지 물어볼 것이다. 그러나 게임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면, 이 때는 실제로 같이 게임을 하면서 탐색해야 한다. 


이때를 위한 게임은 "짧은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필러 게임으로 하는 것이 좋다. 정말 간단한 규칙의 게임에서 조금씩 난이도를 올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용도로 자주 사용했던 것을 예를 2개만 적어본다.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펭귄 파티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매우 쉬운 난이도이면서 상호작용이 강하고 게임 시간이 매우 짧고 3-5인까지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이 매우 많은 게임이다.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한 명씩 합류하면서 즐겨도 된다. 룰설명이 1~2분이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이 게임을 하면서 게임을 이해하는 깊이를 살펴볼 수 있다. 단순히 자신의 카드만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어떤 카드를 낼 것인지까지 염두에 넣고 있는가? 매 순간 순간에 할 수 있는 선택지를 그냥 할 뿐인가, 조금이라도 멀리보고 게임을 하려하는가. 등등을 파악할 수도 있다.


컬러레또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쉬운 난이도이지만, 점수 규칙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짧은 편인 게임 시간과 3-5인까지 커버할 수 있다는 장점, 단순히 운으로 승부가 결정나는 것이 아닌 본인의 판단력을 볼 수 있다.


컬러레또는 다른 사람이 어떤 색깔을 모으는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게임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다음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겨야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컬러레또를 하다보면 누군가는 다음 사람에게 너무 좋은 것이 뻔히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주의깊게 생각해야한다. 만약 한 두번 "그런 행동이 뒷 사람을 너무 유리하게 해준다. 저 사람이 모으는 카드를 한 번 살펴보라"라는 식으로 언질을 주었음에도 반복된다면, 이는 중요한 싸인이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손해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선택만 중요할 수 있다. 이는 게임의 승패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만약 게임을 승패와 무관한 자기 만족으로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있는 테이블에서는 "상호작용"이 강한 게임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허무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런 행동이 게임의 점수 규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같은 경우, 상황이 잘 맞다면 컬러레또를 그대로 한 게임 더 해보아서 확인할 수 있다면 좋다. 다시 해보니 이젠 적절하게 상대방을 견제하는 행동을 한다면 앞선 행동이 게임 규칙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일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을 두 번째 했는데도 똑같은 행동을 또 보인다면, 앞서 언급한 승패에 관심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이 게임을 두 번째 했을 경우에도 게임 규칙을 완전히 숙지하고 계속 규칙을 다시 확인시켜줘야 하는 경우이다. 이 정도로 보드게임에 익숙하지 않다면 다른 모임원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엔 무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참여시킬 것인지 아닌지는 모임장이 판단해야할 것이다. 


(출처: Flickr)


이처럼 난이도가 다양한 필러 게임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의 보드게임 숙련도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기 좋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이다. 자신의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즐거울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고 싶다면, 모임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연습을 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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