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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된 사진의 출처는 보드게임긱, 영문 위키피디아입니다.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게임들이 있습니다. 미스터 잭이나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처럼 유명 연쇄살인마를 배경으로 한 게임부터,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리해내는 셜록 홈즈 컨설팅 디텍티브, 디셉션 : 홍콩 살인 사건 등의 게임도 있지요. 블러디 인은 이보다 한발짝 더 나아가, 피비린내 나는 여관 주인으로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살인해서 땅에 묻고 돈을 갈취해야 하는 테마의 게임입니다. 대놓고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테마라니, 섬뜩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자극적이고 독특한 테마의 게임들을 좋아합니다. 따라서 블러디 인 역시 공개되자마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던 게임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테마만 특이하고 게임은 재미없는 소위 '테마빨' 게임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이름 : The Bloody Inn

디자이너 : Nicolas Robert

제작년도 : 2015

인원 : 1-4인

연령 : 14세 이상

시간 : 30-60분

분류 : 핸드 관리

보드게임긱 순위 : 672 (2016/9 기준)


19세기 초 프랑스의 한 여관 근처 강에서 머리가 박살난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근처 여관 주인이었던 부부와 조카, 그리고 고용인을 체포했습니다. 그들은 약 50명에서 100명의 투숙객들을 잔인하게 살인하고, 돈을 빼앗고, 심지어 죽은 자의 신체 부위를 끓여 스튜로 손님들에게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공개 처형 당했습니다. 이 끔찍한 일은 훗날 Auberge rouge, 붉은 여관 사건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블러디 인은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여관 주인 가족의 일원으로서 투숙객들을 살인하고 돈을 갈취하여 가장 돈을 많이 번 플레이어가 승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을 어떻게 저지를 수 있나고요? 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말로 설득하고 돈만 쥐어주면 살인에 거리낌없이 동참할 정도로 부패했거든요. 심지어 플레이어들은 한가족이지만 돈 앞에선 그런거 없습니다.



각 플레이어는 자신이 고용한 농부 카드 두 장과 여관방 하나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손님 카드들 중 일부를 빼서 섞어 손님 덱을 만듭니다. 매 라운드는 손님 맞이 단계로 시작하며, 방의 수만큼 손님들이 입실하게 됩니다. 선 플레이어가 투숙객이 어느 방으로 들어갈지 결정합니다.

이후 플레이어 행동 단계에서, 플레이어들은 총 5가지 행동 중 한 가지를 시행합니다. 각자 행동을 두 번씩 돌아가면서 한 후, 손님들이 숙면을 취하고 떠나면서 방값을 내게 됩니다.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손님 매수 : 비용에 해당하는 만큼의 카드를 내고 방에 있는 손님을 매수합니다. 매수에 특화된 카드를 냈다면 그 카드는 손으로 돌아오고, 그렇지 않은 카드는 버려집니다. 매수한 손님 카드는 손으로 들어옵니다.*

2. 건물 건설 : 비용에 해당하는 만큼의 카드를 내고 손에 있는 손님으로 건물을 짓습니다. 건설에 특화된 카드를 냈다면 그 카드는 손으로 돌아옵니다. 손님 카드를 바닥에 깔아 건설했음을 표시합니다. 건물들은 특수 능력이 있습니다.

3. 손님 살해 : 비용에 해당하는 만큼의 카드를 내고 방에 있는 손님을 죽입니다. 살인에 특화된 카드를 냈다면 그 카드는 손으로 돌아옵니다. 살해한 손님 카드를 뒤집어 시체면이 위를 보도록 합니다.

4. 시체 매장 : 비용에 해당하는 만큼의 카드를 내고 시체를 건물 밑에 묻습니다. 매장에 특화된 카드를 냈다면 그 카드는 손으로 돌아옵니다. 각 건물엔 비용만큼의 갯수의 시체를 묻을 수 있습니다. 시체를 묻으면 해당하는 만큼 돈을 받습니다. 다른 플레이어의 건물에도 시체를 묻을 수 있으며 이 경우 돈은 반씩 나눠 갖습니다.

5. 돈세탁 : 플레이어가 소지할 수 있는 현금은 40프랑이 최고입니다. 이 이상의 현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이 행동을 통해 현금을 10프랑 당 1장의 수표로 바꿀 수 있습니다. 수표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없으므로, 현금이 필요한 경우엔 이 행동을 통해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합니다.



행동이 끝난 후 투숙객들은 방 주인에게 방세를 주고 여관을 떠납니다. 이 중 경찰이 남아 있었다면 수상함을 느끼고 여관 수색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누군가가 시체를 처리하지 못했다면 무덤지기에게 어마어마한 뒷돈을 쥐어주고 시체를 버려야 합니다. 이후 내 손에 있는 카드 한 장당 1프랑의 임금을 지불합니다. 지불하지 못하면 카드를 버려야 합니다.

살아남은 손님들이 모두 두 번씩 여관을 방문하면 게임이 종료됩니다. 가장 돈이 많은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테마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잔인합니다. 굳이 이런 테마로 게임을 만들었어야 하나 의문이 들지요. 실제로 게임을 하다보면 '죽여야 되나?' '일단 죽여!' '아! 무슨 경찰이 이리 많이 깔렸어?' 따위의 섬뜩한 대화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이 게임의 또 다른 재미이긴 하지만, 많은 분들에겐 불편한 경험일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및 퍼블리셔도 이를 경계했는지 우스꽝스러운 아트웍과 나름의 논리적인 (?) 설명을 통해 무게감을 덜어내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룰북엔 이들 여관 주인들에겐 살아있는 사람의 돈을 빼앗는 것은 비도덕적인 일이지만, 죽은 자의 돈을 가져가는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런 실없는 농담을 보다보면 어깨가 자연스레 가벼워지기 마련입니다.



이 게임은 핸드 관리 게임의 기본에 충실한 게임입니다. 카드를 어떻게 가져오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핸드 관리 게임의 정수인데, 이 게임은 그 부분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여타 핸드 관리 게임들처럼 블러디 인에서 한 장의 카드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하게 되기 때문에, 좋은 카드를 손에 가져와서 특화된 능력으로 활용할 것인지, 건물을 지을 것인지, 아니면 살인 및 매장을 통해 돈을 얻을 것인지 판단하고, 의미있는 결정들을 내려야 합니다. 게임을 하면서 의미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언제나 즐겁지요.



블러디 인은 게임 내 여러 장치들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1. 일반적인 카드 게임에선 손에 카드가 많으면 무조건 좋습니다. 따라서 드로우를 땡기는 카드들의 가치가 높죠. 하지만 블러디 인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매 라운드마다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1프랑 1프랑이 소중하기에 손에 있는 카드 숫자를 조절해야 합니다.

2. 시체를 묻는 것은 손이 많이 갑니다. 건물도 지어놨어야 하고, 액션을 하나 소모하면서 카드를 여러장 버리거나 매장에 특화된 카드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시체를 쌓아만 둘 수도 없습니다. 경찰이 여러명 등장하면 굉장히 까다로워지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손님 살해와 시체 매장이라는 두 가지 액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3. 현금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돈이 40프랑뿐입니다. 특히 3단계 시체는 묻을 때 많은 돈을 주는데, 이미 어느 정도 돈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매장을 하면 남는 현금을 허공에 뿌려야 합니다. 즉 돈세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게임이 굉장히 빡빡합니다. 큰 제약 없이 시원하게 풀어나가는 여타 핸드 관리 게임과는 많이 다른 느낌입니다.



게임이 시스템적으로는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깊이가 조금 얕은 것이 아쉽습니다. 결국 주 승리 수단은 살인 후 매장이기에, 게임이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지겨워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카드의 능력이 조금 더 다양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전략의 획일화를 방지하기 위해선 독특한 카드 능력들이 필수인데, 비슷비슷한 능력의 카드가 많다보니 결국 다같이 큰 돈을 쥐어주는 살인에 손을 대게 됩니다. 여러 장의 카드가 게임 시작 전 빠지는 게임의 특성 상, 동일한 카드를 여러 장 넣을 수밖에 없었을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보통 이런 경우 확장에서 그 아쉬움을 달래주길 기대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확장이 나올 것 같진 않군요.



호감가지 않는 테마와 빡빡한 게임성 때문에 이 게임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카드 게임이다보니 카드 운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편이고요. 하지만 이러한 류의 게임에 크게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한 번쯤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의외로 탄탄한 게임성에 푹 빠지실 지도 모릅니다.



*손님 대신 농부 카드 2장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 땐 비용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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