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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살인자가 되는가 - 10점
요제프 빌플링 지음, 김세나 옮김/한국경제신문


지난번에 포스팅했던 저번 2월 말에 지른 책 중 소개하지 않았던 책입니다.


2015/03/13 - [사둔 책] - 2015.02.22. 지른 책들.


이 책은 제목을 보자마자 사고 싶었습니다. 제가 품고 있던 질문을 바로 책 제목으로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제 입장은 고전적으로 보자면 성선설에 가깝습니다. 칼 로저스가 주장하는 "실현 경향성"을 인간은 항상 가지고 있다고 저도 믿습니다. 뭐랄까, 히틀러와 같이, 인간은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믿는 겁니다. 뭔가 좀 종교 같지만 '영성'이라는 말이 이 경우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비록 전 종교인은 아니지만)


그래서 "무엇"이 인간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걸 알아야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노력할 수 있으니까요. 사회적으로 살인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원인을 건드리지 못한 체 살인을 한 "개인"의 잘못만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 "개인"을 사회로부터 격리 혹은 제거하기만 한다면, 결코 살인이라는 범죄는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점에서 서서 거의 30분 정도를 매대 앞에 서서 읽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다리 아플 때까지;;) 아쉽게도 이 책은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 질문을 구하는 것은 저자의 역량 밖이었고, 저자 자신도 서문에서 분명하게 자신의 역할은 심층심리분석이 아니라고 언급합니다. 


"이 책의 제목을 '사람은 왜 살인자가 되는가?'라고 한 데는 의도가 있다. 엽기적이고 잔인한 살인사건을 접할 때마다 나는 살인 동기가 거창하고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놀라곤 했다. 성욕이나 부에 대한 탐욕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누구나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막아주는 고귀한 '저지선'을 넘게 되었을까? 살인사건 심문전문가로서 누구보다도 그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나는 그저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낀 것들을 전하고 싶다. 심층심리분석은 다른 유능한 전문가의 몫으로 남기고, 나는 다만 모살과 고살이라는 세계, 그리고 인간 영혼의 심연에 대해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요제프 빌플링, "사람은 왜 살인자가 되는가"


저자 요제프 빌플링 살인전담 수사관이면서 심문 전문가로 재직 시절 그가 해결한 모살 및 고살 (둘 다 의도적인 살인을 말한다) 사건은 약 100건에 이르는데, 사건 해결률이 99%였다고 합니다. 심문 전문가인 그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살인자와 가장 대화를 많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담과는 다르지만 그 역시 "대화"라는 수단을 전문적으로 갈고 닦은 전문가인 셈이죠. 따라서 살인 사건 전후의 살인범의 마음상태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의 첫번째 사례 "섹스와 자기애"편에서 범인의 자백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이 제겐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알렉산더가 그토록 광범위하게 자백한 것은 내가 그에게 공공기관의 보호를 받으면서 훌륭한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때까지의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가 자백한 진정한 이유는, 그가 나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에게 점점 더 중요한 사람이 되어갔고,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 요제프 빌플링, "사람은 왜 살인자가 되는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치료적 관계", 인질극 상황에서 나타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함께 머리에 떠오르더군요.


이 책은 살인사건 수사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점은 크게 3가지 였습니다. "살인자"의 시점과 "피해자"의 시점, 그리고 "수사관"의 시점까지. 시점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객관적이려고 저자가 노력했다고 느꼈습니다.


이 책은 장마다 하나의 사례씩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사례가 살인 동기와 살인자의 특성이 모두 다르도록 구성해서,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1. 섹스와 자기애
  2. 가정폭력
  3. 잔인함의 끝
  4. 여자는 왜 살인을 하는가
  5. 살인 욕구
  6. 변태의 재구성
  7. 돈의 맛
  8. 은폐하려는 자
  9. 시체를 토막 내는 이유
  10. 공공의 적


저자가 책의 제목에 써놓은 질문에 답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책 속에서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들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태도와 방식에서 그 나름의 답을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책은 살인자, 피해자, 수사관의 내면으로 들어가 사건을 간접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 낯선 경험을 맛보게 해준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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