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화성에서 온 게이머, 금성에서 온 게이머는 레이지니와 클래리티의 새 기획물로서, 서로 취향이 확연히 다른 게이머들이 보드 게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을 정리한 코너입니다. 특정 보드 게임에 대한 의견, 보드 게임이라는 취미 자체에 대한 서로의 생각 등이 주 대화거리가 될 예정입니다. 꾸준히 업데이트 될 예정이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이 글은 클래리티 (이하 클)레이지니 (이하 레)가 2016년 12월 4일, 12월 9일 이틀간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클 : 안녕하세요. 클래리티입니다.


레 : 안녕하세요. 레이지니입니다.


클 :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레이지니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레 : 전 과거에는 물리학 공부를 좀 오래했었고, 지금은 심리 상담을 배우고 있는 과정생인데, 올해 중반부터 지금의 헤이븐 모임을 운영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클 : 오, 심리 상담이라 하시면 사람들의 심리에 관심이 많으실 것 같네요?


레 : 아무래도 그렇죠. 보드 게임에 끌렸던 것도 사람과 사람이 실시간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점 때문이었겠죠. 그래서 보드 게임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 만나고, '아,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구나.', '이 게임은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구나.'... 그런 것들을 좀 보게 되는거 같아요. 약간 직업병 같네요.


클 : 오호. 일반적인 분들과는 보드 게임을 약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실 수 있겠네요.


레 : 뭐... 사람들 하나 하나에 관심을 조금 더 기울인다고 보면 되지만, 사실 심리 상담가라고 해서 독심술사 같은건 아니라서요.


클 : 그렇죠.


레 : 그냥 좀 더 사람의 내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 정도면 맞습니다.


클 : 그렇군요.


출처 : http://images.wisegeek.com/male-therapist-in-blue-shirt-in-chair-with-patient-on-a-couch.jpg


클 : 한가지 더 여쭤볼게요. 어떤 게임들을 좋아하시나요?


레 : 아... 굉장히 진부한 질문이지만, 동시에 어려운 질문이네요. 전 일단 타이틀로 말하자면 1889, 푸에르토 리코, 태양신 라, 협력 게임으로는 하나비, 안도르의 전설, 워게임의 탈을 쓴 협상 게임으로 마리아를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게임보단, 싫어하는 게임 물어보시면 더 분명히 답할 수 있습니다. ㅋ


클 : ㅋ 그럼 싫어하는 게임 5개만 말해주세요.


레 : 갤러리스트 작가의 게임들...


클 : ㅋㅋㅋ


레 : 그리고 테라 미스티카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싫어하는 편.


클 : 그래도 많이 하시던데요?


레 : 사람들이 좋아서 합니다. 게임 자체는 전 답답한 느낌이라 싫더군요. 테라와는 별개로 요즘 느낀건데, 점수 루트가 다양하고 그 과정에서 효율적인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게임들을 제가 힘들어하는 듯 해요.


클 : 아그리콜라 같은?


레 : 일꾼 놓기가 특히 그렇죠. 뭐랄까, 비유하면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있는 부페에 데려와서 '1~2개만 먹어.'라고 하는 느낌... 매 턴마다 결정장애에 걸려버릴 것만 같아요. 그리고 결국 모든 선택을 후회하게 되죠.


클 : 오... 저도 조금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요. 조금 다르긴 한데, 저는 선택지가 광범위하게 주어지는 게임들을 힘들어 하거든요.


레 : 아, 맞아요.


클 : 그래도 예를 들어 아그리콜라나, 테라 미스티카 등은 시작 능력이나 카드 등으로 인해 제 갈 길이 어느 정도 확실한 편인데, 카베르나 같은 게임들은 결정하기가 좀 힘들어요 모든 건물이 모두에게 공개된 채로 시작부터 지을 수 있는 형태거든요. 그런 부분에선 푸에르토 리코도 좀 힘들더라고요. 물론 주어지는 농장에 따라 길이 갈리긴 하지만요.


레 : 그렇죠. 아, 좋아하는 게임 빠뜨린게 하나 있어요. 추상 전략, 특히 바둑이요.


클 : 그러고 보니 리코쳇 로봇이나 카르카손은요?


레 : 그 게임들은 삶 속에 녹아 있어서... ㅋㅋㅋ


클 : 아... 잘 알겠습니다. ㅋㅋㅋ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1190060/puerto-rico-limited-anniversary-edition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143856/carcassonne


클 : 저는 응급실에서 꽤 오래 근무를 했어요...그렇다고 해서 딱히 팬데믹에 더 애착이 가거나 하는건 아닙니다. 지금은 그때처럼 힘든 일을 하고 있진 않아서, 블로그에 객원 리뷰어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레 : 오오 응급실!...힘들겠군요.


클 : 생각보단 할만해요. 응급실 이야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직업 특성 상 사람을 굉장히 많이 만나게 돼요.


레 : 아, 다른 의미에서 저와 비슷하군요.


클 : 네. 소아부터 90세 할머니까지 두루 만나게 돼요. 개중에는 정말 아픈 사람들도 있고, 그 아픈 사람들의 보호자들도 있고, 행패부리는 술주정뱅이들도 있지요. 이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육체적으로건 심리적으로건 급박한 상태이기도 하고요.


레 : 그렇겠네요. 평정심을 갖고 오지 않겠네요.


클 : 그래서인지 사람을 파악하는 눈치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저도 모르게 좀 빨라진 편입니다. 학생때만 해도 눈치 없기로 유명했는데 말이죠. 재밌는건 저 말고도 다른 동료들 보면 신기하게도 다들 그렇습니다.


출처 : https://www.uvmhealth.org/medcenter/PublishingImages/WebPartPictures/emergency-medicine-ER-vermont-find-a-doctor.jpg


클 : 학생 때는 친구들과 시타델을 했었고, 그들 중 보드 게임에 빠진 친구 몇몇이 소개시켜주어 12년도엔가 아그리콜라로 본격적으로 입문을 했고요, 이후 메이지 나이트, 안드로이드: 넷러너 등을 했습니다.


레 : 오, 올해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저보다 4년 선배셨군요.


클 : 아... 모임은 저도 올해가 처음이에요. 그전에는 친구들이랑만 했어요. 보드게임긱이나 보드라이프 이런 데는 있는지도 몰랐어요.


레 : 그럼 지금 좋아하시는 게임은 역시 메이지 나이트?


클 : 그건 게임 자체도 재밌지만, 여러 가지 의미로 제 인생에서 중요한 게임이에요. 아마 죽을때까지 1위 자리 안 내려놓을거 같아요. 그밖에 아그리콜라, 버건디의 성이 탑 3이고, 칸반, 레이스 포 더 갤럭시, 리코쳇 로봇 등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협력 게임은 어지간한건 질색해요. ㅋㅋㅋ


레 : 저와 겹치는건 리코쳇 로봇 뿐인가요? ㅋㅋㅋ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1283221/mage-knight-board-game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44565/ricochet-robots


클 : 이제 그러면, 이 기획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나갈 예정이신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레 : 이번 기획은 시험적인 것으로, 특정 보드 게임에 대한 서로의 소감, 생각들을 나누면서 보드 게임을 둘러싸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와 같은 라디오와는 달리, 글로서 주고 받는 대화는 어떤 내용들이 담아질지 궁금합니다. 이 대화가 어찌 진행될지 이번에 해봐야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싶어요.


클 : 네, 일단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오늘은 팬데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팬데믹은 어떤 게임인가요?


레 : 워낙 유명한 게임이죠. 협력 게임을 부흥시킨 게임이라고도 하고요. 게임 자체는 전세계에 퍼진 질병 4가지의 치료제를 제한된 턴 안에서 질병을 잘 억제하면서 개발하는 게임입니다.


클 : 간단히 하는 법을 설명해주세요.


레 : 플레이어들은 하나의 직업을 고르고, 해당 색의 말을 보드 위에 움직이면서 게임을 진행합니다. 각자의 턴은 액션 포인트 (Action point)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건 4 AP, 즉 자기 턴에 4번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행동은 이동, 치료, 연구소 건축, 치료제 개발, 정보 교환이 있고, 제한된 시간 내에 4가지 질병에 대한 치료제를 모두 개발하면 다같이 승리하게 됩니다. 즉, 플레이어들이 다같이 의논하면서 함께 미션을 성공시키려는 게임이죠.


클 : 플레이어들끼리 의논을 한다.


레 : 거기에 이 게임의 매력과 약점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1029048/pandemic


클 : 하나씩 이야기해볼까요. 레이지니님이 생각하시는 이 게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레 :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테마와 시스템의 조화라고 봅니다. 질병들이 한번 발생한 도시엔 계속 발생하고, 옆에 있는 도시로 퍼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것, 전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테마에 몰입을 못 할 경우엔 그 매력은 의미없지만요.


클 : 테마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크니까요.


레 : 그쵸. 하지만 확실히 시스템과 테마 연결이 잘 되어있는 게임입니다. 그러면서 운의 요소도 넣어뒀죠.


클 : 네, 저도 그건 동의해요. 저는 이 게임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감염 덱인데, 아까 이야기하신 것처럼 한 번 감염된 도시는 계속 감염이 되는 것을 잘 구현한 것 같아요. 한 플레이어의 턴이 끝나면 감염 덱에서 카드를 몇 장 뽑고 그 카드에 적힌 도시에 질병 큐브를 올리는데,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전염 카드가 등장을 하고, 이 전염 카드가 등장을 하면 감염 덱 바닥에서 카드를 하나 뽑아 거기에 질병 큐브를 3개 올린 후, 감염 덱 디스카드 덱을 섞어서 원래 있던 감염 덱 맨 위에 올린단 말이죠.


레 : 네, 그게 정말 멋지더군요.


클 : 즉, 플레이어들은 어느 도시에 질병 큐브가 올라갈지 어느 정도는 알지만 확실히 알지 못하는 애매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뜬구름 잡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짜여진 대로만 플레이하게 되지도 않아요. 이런 시스템은 다른 게임에서도 잘 못 봤던거 같아요. 그나마 로빈슨 크루소가 조금 비슷한 것 같고요.


레 : 명작인 이유가 그 점이라고 봅니다.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3211774/pandemic


클 : 그럼, 약점인 부분은 바로 그 테마에의 몰입도를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레 : 그건 사실 2번째 약점이고, 가장 큰 약점은 역시나 독재자의 존재죠.


클 : 알파 게이머.


레 : '협력'을 의미없게 하는 게이머. 동시에 거기에 순응하는 게이머도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클 : 오, 조금 더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레 :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자기가 결정하고 그 결과를 자기가 책임지는 것. 그걸 순응하는 게이머가 놓치고 있는 거라면, 알파 게이머는 게임의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어떤 과정'으로 승리할 지는 신경 안 쓰고 있는 거죠.


클 : 알파 게이머를 만드는 것은 그 당사자의 문제도 있지만 그걸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게이머들의 문제도 있다는 이야기신거죠?


레 : 문제...라고 하면 좀 강한 어조지만요. 예상되는 미션 실패에 대한 책임, 그리고 게임의 재미를 능동적으로 추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 일정량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 익퓨님이 팟캐스트 보담에서 '에러플의 책임은 모두의 책임'이라고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클 : 그렇네요. 룰 마스터만 룰을 익혀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레 : 네. 모든 수고와 책임을 한 명에게 떠넘기는건 가혹하죠.


클 : 물론, 에러플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문제'는 아니에요. 알파 게이머는 '문제'고요.


레 : 그쵸. 게임의 재미를 앗아가는건 '문제'죠.


클 :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이 가면서도, 이런 경우가 떠오르긴 하네요. 보드 게임에 갓 발을 들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숙련자에 비해 게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런 상황이라면 알파 게이머가 등장했을 때 상대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이야기하지 못할 거에요. 이런 경우에까지 '책임'을 무는 건 조금 가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레 : 네, 맞아요. 저도 책임이 5:5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출처 : https://cdn2.hubspot.net/hub/31983/file-13731106-jpg/images/bigstockphoto_anger__1167749-resized-600.jpg

"산티아고로 가서 이 큐브를 치..."

"내가 빌어먹을 연구소나 만들라고 했지!"

배트맨 : 알파 게이머

출처 : https://s-media-cache-ak0.pinimg.com/236x/b4/71/36/b4713626a51d87e6e4a57403189f78e8.jpg


클 : 조금 다른 이야긴데, 저는 알파 게이머를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게임 그 자체라고 보거든요. 저는 책임이 5:5긴 한데, 사람끼리 5:5가 아니라 '게임 책임 5 : 사람 책임 5' 라고 생각해요.


레 : 아, 그것도 동의합니다. 좋은 관점이라고 봅니다.


클 : 물론 많은 수의 협력 게임이 알파 게이머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죠. 팬데믹만의 잘못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만큼 많은 수의 협력 게임들이 알파 게이머를 안 만들려는 여러 시도를 하고 있어요.


레 : 예를 들면?


클 : 하나비는 자기 손을 못 보죠. 알파 게이머가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뭐 그 와중에도 남의 턴에 과하게 참견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ㅋㅋㅋㅋ 자기 손을 모르니까 아무래도 의견을 더욱 강하게 이야기하긴 힘들거에요.


레 : 정보의 비대칭이군요.


클 : 실시간 요소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탈출이나 퓨즈 같은. 이런 게임은 내꺼 보느라 바빠서 남의 행동까지 참견하긴 힘들어요.


레 : 아하, 실시간은 그런 식으로 보완하는군요. 맞네요.


클 : 아니면 데드 오브 윈터처럼, 이건 온전히 협력 게임이라고 보긴 좀 힘들지만, 서로가 서로를 전혀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알파 게이머가 떠들어봐야 '너 개인 미션 달성하려고 그러지?' 또는 '배신자니?'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죠.


레 : 맞아요. 결국 모든 정보의 공개가 1인 게임을 만드는 가장 큰 요소인 것 같아요.


클 : 그걸 디자이너인 맷 리콕도 알았는지 핸드는 비공개라고 명시해놓긴 했는데, 답답하기만 하고.


레 : 의미없는 룰이죠.


클 : 맞아요. 굉장히 의미없어요.


레 : 라이너 크니지아의 반지의 제왕에선 다른 방식을 활용했다고 하더군요. 협력의 의미를 '의논'만이 아니라 '희생'을 포함시켜, 전체가 5를 희생하는 대신 개인이 10을 희생해야 하는, 훈훈하게 풀어나가는 게임이라고 하는데... 아직 못해봤네요. 룰 숙지 하겠습니다. ㅠㅠ


클 : 나중에 제가 헤이븐 가면 같이 해보죠.


레 : 네, 그러죠.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2758396/hanabi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742560/lord-rings


클 : 그럼 제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팬데믹을 안 좋아해요. 싫어한다는게 맞겠네요.


레 : 오, 안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요?


클 : 협력 게임을 전반적으로 다 안 좋아하는게 첫번째고요, 이건 이따 이야기해볼게요. 두번째는, 확장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본판만 보면 게임이 밋밋해요. 매 판 매 판이 비슷하고 심심해요.


레 : 리플레이성이라고 해야 하나요?


클 : 리플레이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냥 취향 문제인것 같기도 해요. 물론 매 판마다 큐브가 떨어지는 도시가 다르고, 캐릭터가 다르고, 주어지는 상황이 다르긴 한데, 그걸 크게 보면 결국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레 : 흐음.


클 : 제가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게임이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인데요.


레 : 아하, 네.


클 : 주어진 주사위 조건에 맞춰서 최적의 행동을 찾는 것도 재미있고, 특히 시작 캐릭터들이 다양하면서도 하나같이 무지막지하게 강력해서 그걸 써먹는 재미도 있는데, 정작 그들이 하는 행위는 자원을 모아서 승점으로 변환하는 것 뿐이잖아요.


레 : 그렇다면 궁금한게, 그렇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게임은 어떤게 있나요?


클 : 그게... 대부분의 유로게임이 다 이렇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임이랑 아닌 게임이 뭘까 고민을 좀 해봤는데, 아그리콜라 같은 경우는 실제로 농사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니까, 그런 점이 다른가 싶기도 하고...


레 : 테마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느냐...일까요?


클 : 네, 그렇게 보는게 맞겠네요. 특히 게임에서의 행위나 자원이 갖는 의미가 와닿느냐 아니냐의 차이이기도 한 것 같고요. 아그리콜라의 자원인 곡식, 야채, 나무, 돌, 갈대, 흙, 양, 멧돼지, 소 등은 하나같이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에서는 낙타를 제외한 향신료, 비단, 황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레 : 그 자원들이 A, B, C라고 해도 별 차이가 없이 느껴진다는 거군요.


클 : 그거에요. 저 자원들이 금 은 동이라고 해도 플레이하는 입장에선 크게 다르게 느껴질 것 같지 않아요.


레 : 그것이 '자원을 표시하는 일러스트나 디자인'만이 아니라, 그 자원이 게임 내에서 하는 역할이 그 자원의 이름과 어울리도록 해야한다는 거군요.


클 : 해야 한다...는 너무 간 것 같고요, ㅋㅋㅋ 제 취향의 문제지요.


레 : ㅋㅋㅋ 최소한 게임 테마에 몰입하게 하려면 그래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다면, 팬데믹에서 사용하는 자원이라고 할 게 카드인데, 그 카드가 테마와는 조금 안 맞는다는 점이 게임을 밋밋하다고 하시는 이유일까요?


클 : 음, 카드를 '그 도시에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생각하면 비행이나 연구소 건설 같은건 이해가 되는데 치료제 개발은 정말 뜬금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렇게 해석하면 '연구자'가 '권한'을 다른 사람한테 더 잘 건네주는 것도 좀 이상해요.


레 : 뭔가 연구해서 치료제를 개발하는 테마가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팬데믹에는 없죠. 


클 : 콘코디아도 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게임인데, 비단이 사람을 고용하는데 주로 사용된다는 거, 벽돌이 집 짓는데 주로 사용된다는 거 빼면 자원 간의 특색이 잘 와닿지 않더라고요.


레 :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랑 초점을 두는 부분이 다른 점도 있군요.


클 : 오, 레이지니님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시나요?


레 : 저도 게임에 테마가 살아있는걸 좋아해요, 아니면 추상전략 같이 아싸리 대놓고 테마를 없애던가요. 테마가 없는건 잠깐 빼놓고, 테마를 살린 게임을 얘기해보죠. 클래리티님이 이야기하신건 게임 내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그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하고 있느냐 였는데, 저는 거기에 추가로 그런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의 테마성도 좀 중요하더군요.


클 : 아하.


레 : 예를 들면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꾼놓기'. 할 수 있는 액션들이 있고, 거기에 일꾼을 '먼저' 놓은 사람만 할 수 있다. 저는 사실 이 시스템이 별로 테마와 연결이 안된다고 많이 느끼거든요. '왜 저 사람이 일꾼 늘리기를 하면 나는 일꾼 늘리기를 못하지?'


클 : ...침대가 하나라서?


레 : ㅋㅋㅋ (빵터짐)


클 : ㅋㅋㅋ 죄송합니다. 근데 그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거 같아요.


레 : 제겐 그런 게임의 메커니즘 자체가 테마 몰입을 방해하더군요. 비슷한 예로 세븐 원더스의 드래프트 방식이 있어요. 드래프트를 통해 해당 건물을 가져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클 : 그 시스템은 정말 테마와 몰입시키기 힘들죠. 스시 고는 그래도 회전 초밥이 연상되긴 하지만, 세븐 원더스에서 드래프트는 그냥 테마를 가져다 붙인 느낌이라...


레 : 네. 세븐 원더스는 그렇더라구요. 두 도시 사이에서라는 게임의 드래프트는 서로 협력한다는 측면에서 그래도 조금 좋았는데 말이죠.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326297/agricola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image/840102/7-wonders


클 : 다시 협력 게임으로 돌아가보죠. 제가 생각하는 대다수의 협력 게임의 문제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내러티브가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레 : 그 이야기를 하시니까 밋밋하다는 의미를 조금 알겠네요.


클 : 제게 협력 게임과 경쟁 게임의 차이를 물어보면, 저는 스타크래프트랑 비교를 하고 싶어요. 경쟁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를 배틀넷에서 다른 사람과 대결하는 기분이고, 협력 게임은 헌터 맵에서 사람 대 컴퓨터로 4:4를 하는 느낌?


레 : 아하.


클 : 근데 큰 스토리가 있고 이를 따라 진행되는 협력 게임은 스타크래프트 싱글 플레이 캠페인을 깨는 느낌이에요.


레 : 호오. 그 비유. 스타크래프트를 해본 세대라 그런지 확 와닿는군요.


클 : 이러한 비디오 게임과 비교를 해 본다면 협력 게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캠페인 형태, 최소한 사람들이 보며 즐길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형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류는 작년에 나온 두 가지 중요한 게임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요.


레 : 둘?


클 : 타임 스토리즈와 팬데믹 레거시요.


레 : 아하.


클 : 해서... 팬데믹 레거시 이야기를 좀 해보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