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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틀 임프 The Bottle Imp


보틀 임프는 트릭 테이킹(Trick-taking) 카드 게임이며, 이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쓴 같은 제목의 단편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게임은 2~4명이 즐길 수 있는 카드 게임이지만, 3명이 즐길 경우가 가장 재밌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3명이 플레이하기를 추천합니다. 절판되서 구하기 너무도 힘든 이 멋진 게임을 얼마전 보드라이프의 Mariee님으로부터 그것도 가장 구성품이 알찬 밤부스(Bambus Spieleverlag)판으로 선물 받고 너무 재밌게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우선 원작 소설을 조금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내용은 신비한 호리병을 구입한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이 호리병 속에는 작은 도깨비(imp)가 들어가있어서, 이 호리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모든 욕구와 소망들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대가"가 치뤄지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죽는 순간까지 이 호리병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이 호리병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면, 자신이 구입한 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팔아야만 하죠.


이 게임은 이 소설 속 내용을 매우 훌륭하게 간단한 카드 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소설 속 내용과 매우 일치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자체의 완성도마저 훌륭합니다. 현재까지 제가 해본 트릭 테이킹 게임 중 가장 멋진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밤부스판 보틀 임프에는 나무로된 작은 호리병 모양 하나와 게임에서 사용하는 카드 37장, 그리고 참고 카드 3장이 들어있고, 추가적으로 규칙서와 함께 소설 "보틀 임프"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독일어와 영어로 모두)


카드는 1부터 37까지 적혀있고, 19를 제외하고는 36장이 각각 12장씩 3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참조 카드는 37장의 카드의 숫자별로 색깔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카드는 색깔 별로 가장 높은 숫자 카드 두 장은 6점짜리 카드, 그 다음은 5점짜리, 이런 식으로 각 카드 위에 점수가 동그라미 갯수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점수가 카드를 먹었을 때의 자기가 얻게 되는 점수라고 보면 됩니다.



게임은 각자 12장씩 카드를 받아서, 그 중 1장을 보이지 않고 테이블 중앙에 버려서 쌓아두고, 2장을 자기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1장씩 줍니다. 그러면 양옆에서 받은 2장까지 총 11장의 카드를 손에 들고 시작합니다.


시작하는 사람부터 시계방향으로 카드를 1장씩 냅니다. 카드를 낼 때는 대부분 트릭테이킹 게임이 그렇듯이 처음 낸 사람의 카드의 색깔과 일치하는 색깔의 카드가 손에 있다면 반드시 내야합니다. 모두 카드를 냈으면, 색깔과 상관없이 가장 높은 숫자를 낸 사람이 그 카드들을 먹습니다. 그리고 카드를 먹은 사람부터 다시 카드를 1장 내면서 이를 11번 반복해서 카드를 모두 다 쓸때 까지 진행합니다. 매우 간단한 이 규칙에 딱 한 가지 양념으로 호리병이 추가로 들어갑니다. 그로 인해 이 게임은 매우 흥미로워집니다.



기본적으로는 가장 숫자가 높은 사람이 나온 카드를 먹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만약 이번에 나온 카드들 중에서 "현재 호리병의 가격"보다 낮은 숫자를 낸 사람이 있다면, 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숫자인 사람이 카드를 먹으면서 호리병을 자신이 낸 숫자 위로 가져옵니다. 호리병의 초기 가격은 "19"입니다. 게임 시작시 19카드 위에 호리병을 놓고 시작하죠.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봅니다. A, B, C라고 이름 지은 3명이 플레이하고, A가 선이라고 했을 때,


(현재 호리병 가격 19)

A: 파란색 34

B: 파란색 30

C: 파란색 20


위와 같은 순서로 3명이 카드를 냈다면, 이 3장의 카드를 먹는 사람은 A입니다. 가장 높은 숫자를 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만약,


(현재 호리병 가격 19)

A: 파란색 34

B: 파란색 30

C: 파란색 17


위와 같은 순서로 냈다면, 이 3장의 카드를 먹는 사람은 C가 됩니다. 왜냐하면 현재 호리병 가격보다 낮은 숫자를 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19카드 위에 있던 호리병을 가지고 와서 자신이 냈던 17카드 위에 올려둡니다. 이게 현재 호리병 가격이 17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만약 중간에 B가 자신은 파란색 카드가 없다고 하면서...


(현재 호리병 가격 19)

A: 파란색 34

B: 노란색 18

C: 파란색 17


이렇게 카드가 나왔다면, 3장의 카드를 먹는건 B입니다. 호리병 가격 19보다 낮은 숫자를 낸 사람은 B와 C인데, 이 둘 중에서 더 높은 가격을 부른건 B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동시에 호리병을 가져와서 자신이 냈던 18위에 올려둡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당연히 시간이 흐르면서 호리병의 가격이 조금씩 조금씩 낮아지죠. 모두가 카드를 다 썼을 때 한 게임이 끝납니다. 이때 호리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이번 게임에서 먹은 카드는 모두 소용이 없고, 맨 처음 모두 손에서 1장씩 버렸던 카드들 점수의 합만큼 감점 받습니다. (지옥불에 떨어진거죠.ㅋ)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먹은 카드들의 점수를 받습니다.



게임을 실제로 해보니 이게 얼마나 소설 내용과 잘 맞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매 순간 "호리병"을 사고 싶은 유혹이 계속 올라옵니다. 보통의 트릭 테이킹 게임에서는 "높은 숫자"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카드를 먹을 수 있고, 가장 높은 숫자가 앞에서 나오면 누가 이번 카드를 먹는지는 거의 결정이 되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상대방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카드를 던져주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낮은 숫자"를 가지고 호리병을 가지고 오면서 얼마든지 높은 숫자 카드들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매 트릭마다 유혹이 올라옵니다. "이번 트릭에서 호리병으로 카드를 먹어? 말아?"


초반 호리병 가격이 19였을 때 신나게 호리병을 가져오면서 카드를 먹다보면 호리병 가격이 조금씩 내려가면서 이제 10이하가 되면 이제 게임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누가 호리병을 마지막에 갖게 될 것인가?" 좀 더 정확히 마음을 털어놓자면,


"현재 호리병의 가격보다 낮은 숫자의 카드가 내 손에 남아 있는데, 이걸 어떻게 버리지?"입니다.



처음 게임 규칙을 들으면 착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 1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 결국 마지막 호리병 주인이 되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낮은 카드를 내면서 호리병을 사오지 않는 방법이 딱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높은 가격을 불렀을 때 내는 것이죠. 위의 세 번째 예시에서 C는 17카드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B가 18을 냈기 때문이죠. 내가 1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호리병 가격이 4이며, 아직 2와 3인 나오지 않았다면, 그 1을 반드시 2나 3이 호리병을 살 때 내야합니다. 그래야 내가 호리병을 가져오지 않을 수 있죠. 그래서 이 게임은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집중도가 올라가고 긴장감이 끝으로 갈수록 높아집니다.


재밌는 트릭테이킹 게임들에서처럼 이 게임의 재미 포인트를 느끼려면 카드 카운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카드 카운팅이 쉽습니다. 최소한 1부터 6까지의 숫자들만 관찰하면서 어떤 카드가 빠졌는지 세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조금 욕심 부린다면 10이하 카드 10장, 더 나아가자면 낮은 숫자가 많은 색깔인 노란색 카드들 까지하겠지만요. 저도 잘 못해서 겨우 1~7까지만 세는데, 그것 만으로도 이 게임의 전략적 재미를 느끼기엔 충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맨 처음 게임을 시작하기 전 내가 양쪽 사람에게 줬던 카드입니다. 이게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그래서 보통 가장 "낮은 숫자 카드"를 건내주는 편입니다. 내가 맨 처음에 1과 2를 양쪽에 줬다는 정보는 매우 강력한 정보겠죠.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준 카드를 상대방들이 알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이 게임에서는 또한 "카드 카운팅을 하는 상대를 골탕먹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만약 현재 호리병 가격이 3이고, 아직 1이 안나왔을 때, 2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재빨리 2카드로 호리병을 사올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조건 1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호리병을 마지막에 살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게임이 끝날때 까지 1카드가 안나올 수도 있습니다.


맨 처음 카드를 받고 1장을 중앙에 버릴때, 누군가 1카드를 거기에 버린거죠. 이렇게 되면 1카드를 버렸던 사람만 이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직 자기보다 낮은 숫자가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호리병을 사가는 실수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두 번인가 이 전략에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ㅠㅠ



보틀 임프는 제가 해본 3인 트릭테이킹 게임 중에서는 최고였습니다. 게임 테마와 매우 일치하는 게임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시스템, 거기에 훌륭한 전략성까지.... 카드 카운팅을 5장 이상 못하는 저로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판이고 계속했던 게임입니다. 4인보다는 3인이 훨씬 재밌었습니다. 4인은 아무래도 전략성이 떨어지더군요.


이 게임의 단점은 "구하기 힘들다"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트릭 테이킹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게임은 꼭 해보시길 권합니다.


 * 위의 사진은 제가 찍은 1장 외에는 모두 보드게임긱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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