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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Vassilena Valchanova


'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책을 좋아하다보니, 최근 한참 즐겨 듣고 있는 팟캐스트 "빨간 책방"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소설가 김중혁씨의 대화를 너무 재밌게 듣고 있습니다. 라디오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왠만해서는 감미로운 여자 DJ를 선호하는 제가, 칙칙한 남자 두 명이 진행하는 이 방송을 듣는다는 것이 참 신기했죠. 책이라는 소재 뿐만이 아니라 책을 가지고 그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이 쓴 책이 궁금해져서 찾다가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이 이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 입니다.


뭐라도 되겠지 - 10점
김중혁 지음/마음산책


산문과 만화가 번갈아서 쓴 책입니다. 작가인 김중혁씨는 소설가이지만 만화도 그리시고 표지도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분입니다. (소설리스트라는 사이트를 직접 운영까지 하신다죠.) 그렇게 관심이 많은 점도 그렇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개인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서 굉장히 위로를 받았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낭비해도 괜찮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인생을 낭비해도 괜찮다면,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면, 종이를 낭비해도 괜찮다면, 코앞에 목적지가 보여도 돌아갈 마음이 있다면, 소설을 써도 상관없을 것이다.


-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김중혁 작가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를 전 참 좋아하는데, 거기에 섞여있는 유쾌한 장난끼 덕분에 책을 읽어가는 내내 혼자서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약간의 청개구리라고 할까 장난꾸러기라고 할까, 그 장난끼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참 잘 어울렸습니다.


흙은 소유할 수 없다. 흙은 나눠 가지는 것이고 함께 서 있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알게 된 후부터 소유의 개념이 생겨났다. 나와 너의 구분이 생겨났다. 절대 빌려줄 수 없는 나만의 물건이 생겼으며 나도 꼭 갖고 싶은 너의 물건이 생겼다.


딱지치기에서 딱지를 다 잃는다 해도 집 안의 달력을 뜯어내 (부모님께 조금 혼이야 나겠지만) 다시 만들면 된다. 땅따먹기에서 땅을 다 잃는다 해도 바로 옆에도 선을 그어 (땅으로 인정해주지 않겠지만) 내 땅을 다시 만들면 된다. 플라스틱 딱지나 카드 따먹기에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공장에 가서 플라스틱으로 새 제품을 직접 찍어오지 않는 이상 돈을 내고 사야 한다. 돈이 있어야만 우리들만의 장난감을 살 수 있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미안한 것은 이런 마음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을 가진 자가 권력자였다.


-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내가 만약 하나의 단위가 될 수 있다면 어떤 게 좋을까. 소설가인 주제에 소설은 잘 쓰지 않고 다른 일에만 열중하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게 있다. 1중혁소설가 김중혁이 하루에 쓰는 원고의 양으로 대략 원고지 0.5매다. 보통 이렇게 쓰인다.


"오늘 글 많이 썼어?"


"요새 슬럼프야. 오늘 8중혁밖에 쓰지 못했어."


"뭐? 8중혁밖에 못 써서야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려는 거야?"


"그러게 말야. 나 많이 쓸 때는 20중혁까지 쓴 적도 있는데, 요즘엔 통 풀리질 않아."


-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가만있지 말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나를 밀어 붙이는 주변 환경을 상대로 열심히 저항하면서 "꼭 내가 뭘 해야할 필요는 없어"라고 다독거리며 힘겹게 균형을 잡고 있는 저를 마음 편하게 해주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김중혁 작가 홈페이지 : http://www.penguinnews.net/

소설리스트 사이트 : http://sosull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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