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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ro Larnos


다섯 번에 걸친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와 이세돌과의 세기의 대결은 4:1로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공지능의 5:0 승리를 예상했는데,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승리하는 모습에 내심 마지막 승부도 응원했는데 아쉽네요. 제 바둑 실력은 이제 한 5급 정도밖에 안되고 딥러닝 방식의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도 얉지만, 평소 둘 다 관심이 가던 분야라서 흥미롭게 기보를 살펴보았고, 그 감상을 적어봤습니다. 아래는 제 3국, 4국, 5국이 끝났을 때마다 적었던 감상입니다. (기보와 해설은 타이젬의 실시간 관전기를 참고했습니다.)




이세돌 vs 알파고 제 3국 기보 감상. (해설 Tygem)


해설자 말대로 이세돌이 알파고를 탐색하는 대국이 아니었나 싶다. 초반부터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왔고, 패싸움도 벌여봤으며, 난전으로 이끌려고도 했다.


이미 패배가 짙어졌던 순간에도 패싸움을 걸면서 알파고를 테스트했다는 것을 보면, 이세돌 9단의 목표가 "1승"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다음 대국을 준비하기 위한 수들.


현재 인간과 알파고의 바둑 실력 차이는 알파고가 좀 더 위에 있지만, 그렇다고 접바둑을 당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몇 개월 뒤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세돌이 마지막 5국에서 1승을 거두는 것을... 기대해본다.




이세돌 vs 알파고 제 4국 기보 감상. (해설 Tygem)


분명 알파고는 중앙 싸움 도중 이상한 수를 두면서 자멸했다. 이세돌도 중앙에서 두번인가 실수를 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알파고는 자멸.


이건 이세돌의 초반 전략의 승리라고 본다. 이세돌은 중앙에서 복잡한 싸움을 걸었고, 여기에서 알파고가 자신의 판단능력의 한계를 보이면서 에러와도 같은 초보적인 실수들을 하며 자멸했다. 초반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분명 이세돌에게 유리하다.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 초반이 아직까지 컴퓨터보다 인간에게 유리한 순간이니 여기에 온힘을 다한 것 같다.


알파고는 분명 완벽하지 않다. 기존 3번의 경기에서도 알파고는 어이없는 실수들을 몇 차례 해왔다. 다만 이세돌이 그보단 약간 더 큰 실수를 해서 진 것. 원래 바둑은 누가 실수를 덜 하느냐, 누가 더 큰 실수를 하느냐를 가지고 하는 싸움.


알파고는 분명 중앙 싸움에 약한 것 같다. (물론 내 실력은 알파고는 커녕 알파고 이전 버전인 몬테카를로 방식의 인공지능에게도 지는 수준이지만.;;) 중앙 만큼 변화가 극심하고, 사방 팔방이 모두 연관되어 있는 곳이 없으니까..

개인적으로 마지막 5국에서 이세돌이 흑으로 한다고 했으니, 초수를 천원(바둑판 정 가운데)에 두면서 시작을 하면 재밌을 것 같다. 과연 알파고가 중앙싸움에서 어느 정도 실력인지 보고 싶다.




이세돌 vs 알파고 제 5국 기보 감상. (해설 Tygem)


양측이 최선을 다한 대국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알파고는 큰 실수로 보이는 수는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느낌. 이세돌 9단이 유리한 순간도 있었다고 하나,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알파고의 무서움은 그 "안정감"이 아닐까 싶다.


알파고가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안전한 수들을 두기 시작하고, 이세돌이 "변화"를 만들려고 할 때마다 알파고는 마치 아웃복싱을 하듯이 이세돌의 시도들을 잘 피하면서 자신의 유리함을 뺏기지 않았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하는게 이 경기에서 알파고가 "유리"하거나 이세돌이 "유리"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프로에서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이 "유리함"의 정도는 고작해봐야 1~2집 차이다. 바둑 경기 중반에 자신이 1~2집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프로급의 실력이나 다름없다. 알파고는 형세 판단 능력은 프로급 이상인 셈이다.


누가 아마추어나 실력이 약한 사람을 상대로 두면 알파고가 잘 못두게 되지 않을까라고 얘기하는데 그건 인공지능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본다. 알파고는 "상대 스타일에 맞춰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승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을 뿐이다. 그건 모든 프로기사들이 매 순간 하고 있는 일이고, 따라서 알파고는 최정상급 바둑기사인 것 뿐이다.


알파고는 분명 수십, 수백년간 바둑을 발전시켜온 인간의 경험들을 잘 흡수해서 만들어진 녀석 같다. 다만, 그건 현재 바둑을 두고 있는 수많은 프로 기사들도 마찬가지. 내 생각에 알파고는 우선 인류 최강자급 바둑실력에 도달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다만, "인간의 수준으로 닿을 수 없는 실력"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의문이다.


지금 내 생각은 알파고는 계속 산꼭대기에 있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고 누군가 알파고를 이긴다면, 다시 알파고는 그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할 것 같다. 현재 알파고의 방식으로는 "구름 위에 있는 존재"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는 바둑계에 최정상급 바둑 선수 1명이 (굉장히 안정적이고 이질적인) 나타난 상황이라고 보인다. 알파고의 자기 학습 방식으로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가능성은 아직 나는 낮다고 본다.




추가로 재밌는 블로그의 글 하나를 링크해봅니다.

이세돌보다 앞서서 인공지능과 맞섰던 체스 마스터 카스파로프가 IBM의 딥 블루에게 패배한 과정과 그리고 패배한 이후, 체스계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체스와 인공지능에 대한 그의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좋은 글을 번역해주신 블로그 Boardwalk의 ntrolls님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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